[EC 법제 정비 발등의 불]5회-저작권 및 분쟁해결

인류가 안고 있는 본성적인 한계, 「소유」를 둘러싼 갈등은 디지털시대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디지털화의 대상이 모든 문화상품과 지적생산물로 확장되고 있는 마당에 전자상거래(EC)로 불거질 소유권 분쟁은 불 보듯 훤한 것이다. EC환경에서 야기될 분쟁은 비단 저작권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소비자간(B2C)·기업간(B2B) 거래외에도 국경을 넘나드는 EC의 속성상 국가간 분쟁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경제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저작권이나 분쟁해결책과 관련,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부차원에서 아무런 대응채비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선진 각국들이 자국내 산업보호차원에서 대공세를 취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생겨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작권 =디지털 저작물이 EC의 대상이 될 때 당장 현안으로 다가서는 쟁점은 5가지. △보호대상 저작물 범위 △전송권 △기술적 보호조치 △권리관리정보(RMI) 구축 △온라인사업자의 책임범위 등이 그것이다. 기상·학술 등과 같은 분야도 보호대상저작물에 해당하는지, 디지털저작물을 온라인상에서 유통시킬 때 반드시 원저작자로부터 허락을 얻어야 하는지, 암호화기술 등을 동원한 저작물 보호조치가 침해됐을때 어떤 제재가 가해지는지, 원저작자의 권리사항을 어떻게 관리하고 이에 대한 정보가 침해됐을 때 어떤 조치를 내릴지, 특정 저작권이 도용됐을 때 해당 정보를 제공한 온라인사업자도 책임이 있는지 등에 대한 규정이다. 저작자·온라인사업자나 관련단체, 개별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하나같이 해결이 쉽지 않은 현안들이다.

현행 국내 법규와 관련,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저작물의 권리사항을 포괄적으로 명시한 저작권법이 이같은 쟁점들에 거의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 개정 저작권법이 그나마 전송권만을 신설했을 뿐이다. 정통부의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 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컴퓨터 소프트웨어(SW) 등에 국한되는 실정이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최경수 연구실장은 『명쾌한 해결책이 나오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국제동향에 너무 뒤처져 있다』면서 『최소한 기술적 보호조치와 권리관리정보에 관한 규정은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모든 쟁점들에 뚜렷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는 국가는 드물지만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세계무역기구(WTO)·유럽연합(EU)·미국 등은 각종 규약이나 지침을 채택해 다각적인 대응책을 강구중이다. 최 실장은 『워낙 민감한 현안들이라 국내 독자행보는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다』면서 『문화부 등 정책당국도 문제를 회피할 게 아니라 공론화를 통한 대안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쟁해결 =국내 정책적인 수준을 감안할 때 EC, 특히 B2B 관련 분쟁에서는 아예 「무대책」이나 다름없다. 올해부터 활동에 들어간 전자거래진흥원 산하 분쟁조정위원회도 B2C 거래에 극히 제한적인 역할만을 할 뿐이다. 전경련 B2B특별위원회 법제도분과위원장인 한솔CSN 배윤근 상무는 『B2B 분야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불공정거래 가능성을 안고 있는데다 국경을 초월한 국제분쟁을 야기할 공산도 커 더욱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현행 제도상의 문제는 B2B의 다양한 분쟁유형에 대한 사전 예방책 및 자율적인 해결방안이 크게 부족하다는 점. 대한상사중재원 서정일 박사는 『개정 중재법에 이미 유엔(UNCITRAL)의 가이드라인이 수용되는 등 EC 관련 분쟁에서도 자율적인 해결책은 있다』면서 『그러나 복잡다단한 EC의 속성을 고려할 때 일일이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하는 법적 해결보다는 중재·조정방식이 더욱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현재 논의수준은 매우 일천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유럽 등 각국에서 B2B 분쟁의 유력한 해결대안으로 주목받는 온라인 중재·조정방식이 국내에선 전혀 법적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자거래기본법에서 일부 거론하고 있는 사이버 분쟁조항도 국제동향과는 「따로 노는」 재정비 대상으로 지목된다. 서 박사는 『내심 자국내 산업보호를 바라는 각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대안을 갖고 국가간 협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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