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사장인 L씨 명함에는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찍혀 있지 않다. 대신에 「박사」라는 호칭이 붙어 있다. L씨는 분명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지만 그의 법률적 지위는 회사의 연구원이다.
이처럼 L사장이 대표이사 대신에 연구원 신분으로 숨어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병역특례를 받기 위해서다. 그는 현재 회사와는 별 관계없는 사람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채 이중장부를 꾸려가고 있다.
벤처기업이 밀집해 있는 테헤란벨리에는 L사장과 같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같은 방법으로 군대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이미 보편화됐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를 안가기 위한 편법」이라고 힐난의 눈초리를 보낸다. 하지만 이는 벤처업계의 특성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젊은 나이에 창업해 미처 군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벤처기업 CEO들에게 군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24시간 일을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벤처CEO가 2년 이상을 군복무하는 것은 어찌보면 기업의 존폐가 걸린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이제 벤처사장의 군문제는 다른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병역특례를 받기 위해서는 박사과정에 진학해 전문연구요원 시험을 통과하거나 석사과정 이수후 병역특례업체에 산업체연구요원으로 취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문연구요원의 경우 세금을 내는 직업을 가질 수 없고 산업체연구요원은 특정회사 연구직에만 머물러야 한다. 이 규정대로라면 실험실 창업 등 벤처창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벤처기업이 디지털 신경제시대의 주춧돌임을 인정한다면 벤처기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20대 군미필 창업자들에게도 군문제에 대해 운신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 물론 모든 벤처기업 사장들에게 병역특례를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신생 벤처 창업자와 경영자들에게 전문 연구요원 시험을 실시, 벤처연구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게 되면 병역특례를 주는 방법 등 현실적 여건을 감안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지 않고 현실을 무시한 채 과거규정에만 머물러 있다가는 「박사명함」을 갖고 다니는 벤처CEO들이 앞으로도 계속 양산될 것이며 결국 벤처창업 활성화에도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하다.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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