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논설위원 jspark@etnews.co.kr
정부가 차세대 이동전화인 IMT2000 기술표준 결정 시한을 10월말로 한달 연기한 것은 정부와 민간(사업자)의 관계에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이번 표준결정 시한 연기는 정부가 업계에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진실은 정부가 의도대로 안되자 시간을 벌기 위해서인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벌써 수개월 전 정부가 표준결정 원칙을 「업계 자율에 의한 복수표준」으로 정한 것부터가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었다. 정부는 업계가 모두 비동기식을 원할 경우에 대비를 했어야 했다. 업계가 단일표준을 원할 경우 정부가 조정한다는 단서 정도를 넣었더라면 이번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업계 자율」이라는 원칙이 정부의 자충수가 돼버린 것이다.
그러니 정부는 시간을 한달 더 줄 테니 업계에 다시한번 잘 생각해 보라고 선심을 쓰는 듯하지만 사실 구걸하는 모양새다. 정책 의지가 뚜렷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가 가져야 할 정당한 권위는 상당히 실추돼 버린 듯하다.
정부가 동기식과 비동기식 두가지를 모두 표준으로 관철시키려는 것은 나름대로 이해는 한다. 통상관계나 단말기업체의 이해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동전화를 우리는 동기식으로 채택함으로써 적지 않은 단말기를 수출해 왔기 때문에 정부는 IMT2000에서도 동기식을 유지하려는 것도 틀리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민간사업자가 굳이 비동기식을 원하는 것은 동기식이 지니고 있는 강점보다 남음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와서 동기식이 좋으니, 비동기식이 좋으니 하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정부가 복수표준의 장점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한다 해도 사업자의 이해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다. 정부는 이제 와서 IMT2000기술표준협의회를 구성하고 있으니 그동안 뭐했냐는 지적도 지나침이 없다.
그리고 그 협의회 인선도 사업자 몇 사람과 대학교수, 그리고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등으로 구성돼 있는 것을 보면 참신성도 없다. 이미 일부를 제외하고 그들은 몇 차례에 걸쳐 개최된 공청회나 세미나에서 목이 아프도록 자기들의 입장을 강변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다시 협의회로 끌어들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근본적으로 IMT2000 표준을 정하는 데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사업자의 엇갈린 이해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편익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우리는 지금 이동전화사업자 5개에다, 앞으로 또 IMT2000사업자 3개를 선정하면 모두 8개의 이동전화서비스 사업자가 생기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우선 환경부터 나빠질 수 있다. 지금도 중요한 곳에 각 이동전화사업자들이 기지국을 세우느라 자연이 상당히 훼손되고 있다.
이에다가 또 IMT2000 기지국을 추가로 세우면 그 좁은 나라는 모양도 우스울 것이다. 기지국을 세우는 데 적지 않은 자금이 투자돼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자들의 비용도 그만큼 높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그것은 결국 IMT2000 서비스 요금이 높아져 국민의 부담만 커질 수밖에 없다. 동기식과 비동기식의 로밍이 원활하게 된다 하더라도 각 업체들이 기지국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정부는 바로 이런 것부터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부담없이 이동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여러 사업자가 있지만 같은 지역에서는 기지국을 공용하도록 정부가 유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동전화에서 그렇게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IMT2000에서도 그같은 논의는 뒷전인 것 같다. 정부가 복수표준을 주장함으로써 우리의 환경은 훼손되고 국민의 부담은 더 커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는 동기식인 CDMA 이동전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유럽방식인 GSM 단말기 수출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하고 있다. CDMA 방식 서비스를 개발한 것이 분명한 지난 정권의 성과라면 그것은 이제 지나간 얘기다. 따지고 보면 그때 GSM 방식을 채택했더라도 지금보다 못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정부는 어떤 경우를 본다 하더라도 굳이 무리해 가면서 복수표준을 택해야 할 명분은 약하다. 서늘해져 가는 가을 날씨처럼 이제 냉철한 머리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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