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품.소재산업 르네상스를 위하여>11회-어음제도

『정부에서는 신용대출을 늘렸다고 하는데 돈을 구하기는 예전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자금확보를 위해 어음사용을 더 늘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중견 통신부품업체 K사 K사장.

『어음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할인율이 너무 높습니다.』 중견 전기기기업체 B사 P사장.

중소기업들에 어음은 말 그대로 「필요악」이다. 중소기업 사장이나 자금담당자

들은 경제위기를 지나오면서 어음제도의 폐해를 체감했으면서도 이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어음제도는 기업간 신용수단으로 유동성을 보완해주고 실물거래를 촉진하는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B사 P사장은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자금을 쓰기 위해 어음만큼 유용한 수단

은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음제도는 외환위기 등 경제가 침체국면에 빠진 상황에서 수

많은 역기능을 양산해온 게 사실이다.

우선 어음거래 기업은 연쇄부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어음의 배서 및 양도 관행으로 인해 몇 단계 유통되면서 어음거래 기업 중 한 기업이 지급불능 상황에 이르면 기업의 연쇄부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금융비용 부담이 가중된다. 교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기업은 어음결제 의존도가 커지고 결제기간이 장기화돼 현금흐름이 약화되는 등 금융비용 부담이 커진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IMF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해 3·4분기 기업들의 평균 어음회수 기일은 43일이고 결제기일이 92일로 총 135일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이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어음 최대의 장점이 이미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어음남발로 인해 사회적 폐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높다. 특정기업이 경제적 능력 이상으로 어음을 남발하거나 고의로 부도를 낼 경우 적절한 통제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중소기업들은 어음의 할인율이 낮아 이중고를 겪고 있다. 우

량기업은 사채시장에서까지 어음을 할인할 필요가 없지만 중소기업의 어음은 완전히 찬밥이다. 사채시장에서 중소기업의 할인율은 우량기업은 물론 은행권에 비해서도 턱없이 높다.

B사 P사장은 『최근 들어 중소기업의 어음 할인율은 은행권은 물론 우량기업의 2배 가까이에 달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나 최근 사채시장에서 중소기업들의 어음은 거의 거래가 없는 상태다.

어음제도가 말 그대로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다는 기업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음제도는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경제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파악한 외국 기업인들조차 고개를 흔드는 제도가 바로 어음제도다.

한미 합작업체인 P사 K사장은 『우리나라처럼 마구잡이식의 어음발행이 가능한 나라는 없다』고 단언한다. 미국 등 선진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는 국가의 경우 계좌계설은 물론 수표발행 등이 철저히 신용을 근간으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구조가 왜곡될 가능성이 사전에 차단되는 것은 물론 중소기업들에 신용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준다는 설명이다.

우리 정부도 최근 어음결제를 줄이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다. 통화공급을 늘리고 어음사용의 한 축이 되는 하도급 관행을 개선하며 기업의 어음발행 관리를 강화하는 등 기업들의 숨통을 터주면서 어음남발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도급 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하도록 하고 현금결제 비율을 정부 입찰 심사시 활용하는 등 특혜를 주기로 했다. 이와 함께 현금결제를 지속적으로 이행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제재를 가해 현금결제 비율에 반

영하겠다는 것이다.

이외에 어음 부도자에 대한 신용불량자 기록 보전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등 금융제재를 강화해 어음남발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고식책보다는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한다. 어음제도 개선을 위해서 경제 선순환 구조를 유도할 수 있도록 금융구조조정 성과를 조기에 가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어느 한쪽 시스템만 정상화시킬 게 아니라 총체적인 복구작업을 일시에 진행시켜야 어음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자부품연구원 박경철 팀장 parkkc@nuri.ke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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