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유가 고공행진, 전자업계 먹구름

내수·수출 호조에 힘입어 순풍가도를 달리고 있는 전자·정보통신 업계에 고유가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유가상승을 억제하려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의 강력한 견제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일부 산유국의 원유 증산에도 불구하고 배럴당 30달러를 넘어선 국제 원유가 추세는 모처럼 호황을 맞은 국내 전자·정보통신업계를 다시 침체의 늪에 빠뜨리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소비자의 구매 심리가 움츠러들어 장기적으로 가전·정보통신기기의 수요가 위축되면 부품업계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유가 시대는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국내 전자업체들이 고유가 시대를 맞아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세계시장에 대응키 위한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유가시대는 물론 국내 전자업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업체들이 동일한 조건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걱정할 것이 없지만 이로 인해 제조원가가 높아져 마진율이 낮아지거나 전반적인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기가 하락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가가 오르면 석유를 원자재로 한 합성수지 제품을 사용하는 제품의 제조원가가 크게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냉장고·세탁기 등 케이스가 커 합성수지 사용이 많은 백색가전 제품의 경우 유가가 10달러 올라가면 원자재 가격이 4∼5% 정도 인상돼 제조원가에 1∼2%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 또 TV·VCR 등 부피가 작은 제품들도 백색가전에 비해서는 영향을 덜 받지만 제조원가가 0.5∼1% 정도 상승하는 부담을 안게 되는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고유가시대라고 해서 세계 전지역의 수요가 모두 침체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산유국이 많은 중동이나 러시아 지역은 오히려 수요가 촉발돼 수출이 증가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 LG전자 디지털 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 수출담당인 신문범 상무는 『고유가로 인한 어려움은 전세계의 다른 경쟁사들도 모두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여서 직접적으로는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수출이 줄어들 것으로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LG전자는 이에 대응해 6시그마 등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을 위한 활동을 강화하고 가격 탄력성이 낮은 고부가제품 위주로 수출에 나서는 동시에 산유국이 많은 지역을 대상으로 집중공략하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전업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고유가는 부품업계에도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 종합 전자부품업체인 삼성전기의 한 관계자는 『올초부터 상승 국면으로 접어든 국제 고유가 파고가 이제 서서히 영향을 발휘할 시점에 도달했다』고 우려했다. 특히 원부자재인 화학 소재 및 특수 금속 등의 국제 시세가 불안한 움직임을 보여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이노텍의 한 관계자도 『유가 인상이 생산 단가를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운관용 유리업종은 장치 산업의 특성상 다른 전자업종과 달리 유가에 민감한데 삼성코닝, 한국전기초자 등 업체들은 최근 국제적인 유가 급증 추세가 진정되지 않자 크게 걱정하는 눈치다. 브라운관업계는 전량 두바이유를 쓰고 있는데 최근 두바이유가가 연초에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배럴당 27∼28달러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국제 유가 상승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OPEC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워 지켜보고 있다.

PCB업계는 최근 들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국제 유가흐름에 크게 긴장하고 있다. PCB는 석유화학 소재를 많이 사용하고 제조공정상 전기 및 수도요금이 생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유가 인상은 채산성 악화로 이어진다.

이미 국제 동값상승으로 동박 및 원판의 가격이 15% 정도 올랐고 종이, 수지, 프레프레그 등 거의 모든 원부자재 가격도 인상됐다. 여기에다 전기료와 수도요금 등 공공요금까지 인상되고 있어 PCB업계의 채산성은 악화될 전망이다.

콘덴서 업계에서는 특히 석유화학 제품인 필름을 많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필름 콘덴서업체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름콘덴서업체의 경우 필름이 콘덴서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선에 이르기 때문에 유가가 오르면 곧바로 직격탄을 맞게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가 인상으로 지난해에 비해 원가가 15% 정도 올랐으나 이를 제품가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고유가가 정보통신 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아직까지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 정보통신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면서 원자재 상승으로 인해 자칫 채산성을 악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현대전자 부품 구매팀의 한 관계자는 『고유가로 인해 부품 가격이 상승할 조짐은 아직까지 감지되지 않고 있다』며 『보조금 폐지 등으로 국내 이동통신 단말기 생산규모가 크게 축소되면서 부품 공급업체간의 경쟁심화로 오히려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국내업체가 해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 분야도 유가와 같은 원자재보다는 수요대비 공급 등 수급상황이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 당분간 유가상승으로 인한 가격 상승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전화사업자들은 이번 유가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이동전화가입자가 이동전화 이용을 자제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정보통신업계는 고유가 유지로 인한 환율상승과 같은 간접적인 영향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환율하락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하면서 수출 채산성에 비상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김인구기자 cl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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