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논설실장 hdlee@etnews.co.kr
다음주면 추석이다. 올해 추석은 철이 예년에 비하면 이르다. 그래서 들녘에서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번주말부터는 어김없이 1000만명에 달하는 민족대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전국 고속도로는 귀성차량들로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기 일쑤다. 그래도 귀성객들의 얼굴은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보름달처럼 환하다. 자신이 태어났고 부모형제가 사는 고향가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누가 시켜서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몇시간씩 고생을 한다면 험악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추석은 명칭도 다양하다. 한가위.가위, 중추, 가배절, 중추절 등으로 불린다. 음력 8월은 가을의 중심이다. 만물이 결실을 거두는 계절이라는 의미에서 중추가절이라고도 한다. 절기상으로 이때는 춥지도 덥지도 않아 생활하기에 적합하다. 강우량은 줄고 습도는 낮아 날씨가 상쾌하다. 하늘은 높고 파랗다. 게다가 봄과 여름을 거치면 땀흘려 일한 농작물을 수확하는 계절이다. 모든 게 풍성하니 마음인들 넉넉하지 않을 수 없다. 「부잣집 곡간에서 인심나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특히 지난달에는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이를 계기로 한동안 뜸하던 북한상품이 추석선물로 인기를 끈다고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나올 만하다.
추석이 가까워오자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가마솥 불볕더위도 기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완연하다. 논과 밭에는 벼와 콩, 고추 등 농작물들이 수확의 손길을 기다린다. 봄에 씨뿌리고 한여름 퇴약볕아래 구슬땀을 흘린 결과다. 가로수에서 한여름내 극성스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잠잠해졌다. 그대신 아침 저녁으로 귀뚜라미와 풀벌레들의 소리가 절기의 변화를 알려준다.
하지만 절기는 이처럼 좋은데 우리 주위에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어느 것 하나 시원스레 해결되지 않아 국민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정치와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최근 일어나는 일들을 보자. 상생을 외치면서 상극의 길로 가는 정치권, 환율급락과 단기외채 증가, 외생변수인 원유가 급등, 수출업계의 채산성 악화, 환경오염과 식탁을 위협하는 불량식품, 두달 넘게 계속되는 의약분업사태, 사회전반에 만연한 집단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현상, 기업구조개선 등이 우리앞에 첩첩산중으로 남아있다. 정보통신분야만 해도 인터넷, 벤처기업의 위기설이 나돌아 지난주 정부가 인터넷, 벤처산업활성화 방안을 서둘러 마련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부의 인터넷 등급제에 항의하는 네티즌들로 인해 정부부처의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사태도 일어났다. 더욱 통신업계의 초미의 관심사인 IMT2000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기술표준문제로 업체간 갈등현상이 극심하다. 이달말까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할 사업자들은 아직도 기술표준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는 당초 선정기준을 발표하면서 기술표준은 동기식과 비동기식 복수로 하되 선택은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고 밝혔지만 중간에 입장을 바꾸면서 혼란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당초 발표대로 기술표준을 업계 자율에 맡기든지 아니면 전후사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동기와 비동기를 1대 2 또는 2대 1 비율로 결정토록 해야 한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벼농사를 지을 농민이 모내기를 앞두고 재배할 벼품종을 결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일이 아니다. 사업자 선정못지 않게 외국업체에 지불해야 할 로열티 문제와 장비산업육성책 등도 시급한 과제다. 한국의 정보화수준은 50개 국가중 22위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정보화는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국제환경속에서 우리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녕 풍요속에 넉넉함을 나누는 이 좋은 결실의 계절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신이 거둘 결실은 무엇이며 그 충실도는 어느 정도인가. 모두가 가을의 문턱에서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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