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이동통신(IMT2000) 예비주자들이 사업계획서 작성에 돌입한 가운데 정부가 이들의 기술표준선택에 개입하고 있다는 설이 제기되면서 외압 시비가 일고 있다.
특히 3개 예비사업자 모두 비동기 방식을 선언한 상태여서 정부가 무리하게 이를 조정, 동기 방식으로 전환시킬 경우 상당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게다가 정부는 당초 선정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술표준은 업계 자율에 맡긴다』는 원칙을 천명, 스스로 운신의 폭을 제한한 바 있어 이를 뒤집고 민간기업의 표준결정에 개입한다면 기업들의 반발은 물론 여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지금이라도 정부의 정책의지를 확실히 밝히고 국민과 예비주자들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외압 시비」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야당인 한나라당 IMT2000 실무대책위원회(위원장 김형오 의원)도 29일 논평을 내고 『정부가 부당한 방법과 보이지 않은 손으로 업계를 압박하고 있는 사실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예의 주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통부의 행보 = 매우 다급한 상황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예비주자들의 비동기 선호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동기를 선택하는 사업자가 2개 가량 나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동기사업자가 2개는 돼야 한다는 정통부의 내심(2동1비)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했고 예비주자들도 이를 충분히 읽고 있어 「알아서 길 것」이라는 예상도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기술표준에 관한 한 「업계 자율」 원칙을 강조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명분도 살리고 미국(동기)과 유럽(비동기)의 틈바구니에서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 절묘한 카드로 인식했을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정통부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통신그룹·SK그룹·LG그룹은 여전히 비동기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동기진영 장비업체들은 『산업 기반이 와해된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통부는 최근 예비주자들에 국가 산업 및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동기를 선택해주도록 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고 이 과정에서 정부 개입설이 불거져 나왔다. 정통부의 행보가 이전과 달라진 것은 예비주자들에 대한 주문이 직접적이고 강도 역시 높아졌다는 점이다.
◇예비주자들의 반응 = 가장 곤혹스런 입장이다. 정통부의 의사 전달이 공문을 주고받는 등 공식성을 갖춘 것은 아닐지라도 업체인사에게 정책의지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압력」으로 다가와 갑갑해 하고 있다.
한국통신은 여전히 비동기를 앞세우지만 대주주인 정부의지를 감안할 수밖에 없어 최근에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정부가 동기로 결정한다면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한통 홀로 동기를 서비스할 수는 없고 SK도 함께 동기로 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국통신의 이 같은 입장은 정통부뿐만 아니라 외자유치 및 민영화 관련부처인 기획예산처에까지 전달된 것으로 전해져 정부내 조율이 주목된다.
SK그룹은 『어떤 일이 있어도 비동기로 간다』는 완강한 입장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정부)」의 거듭된 동기 설득으로 난감해 하고 있다. SK는 정부 방침에 따라 비동기 장비업체와 제휴, 비동기를 밀고 나가고 있는데 이제 와 동기로 선회한다면 IMT2000 전반의 사업전략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은 물론 세계 시장진출에도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는 입장이다.
SK는 또 『동기를 선택하건 비동기로 가건 각 사업자의 경영 전략인데 굳이 경쟁사를 끌어들이는 물귀신 작전을 펴는 곳이 있다』며 한국통신을 겨냥한 듯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LG그룹은 상대적으로 느긋하지만 한통과 SK의 행보는 초기 시장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 = 사업권 신청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기술 표준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사업자, 장비업체 차원에서 중소 벤처기업들에까지 전면 확산되고 있다. 업계의 갈등이 계속 깊어져 가고 중소기업 및 벤처 단체들도 두 동강날 위기에 봉착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태도를 분명히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개입을 하려면 공개적으로 하든지 그렇지 않다면 당초 방침대로 시장원리에 맡겨두든지 하라는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논리도 가세한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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