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통신 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29회-디스플레이분야

사진은 김순택 대표이사 부사장, 이상완 대표이사 부사장, 박영구 사장, 구본준 사장, 구승평 대표이사 사장, 서두칠 사장, 김영남 사장, 최병두 전무, 이종덕 교수 등

21세기 전자제품은 칩과 디스플레이만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만큼 두 부품이 전자제품에서 중요하다는 뜻이다.

디스플레이는 반도체와 아울러 국내 부품 산업의 축인데도 불구, 반도체에 비해 각광을 덜 받았다.

아무래도 디스플레이가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비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은 탓일 것이다. 디스플레이업체들이 대부분 세트업체들과 수직계열화를 맺고 있다보니 디스플레이를 하나의 부속품으로 여긴탓도 없지 않다.

사정은 달라졌다.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의 급성장으로 디스플레이를 보는 시각이 180도 달라졌다. 이제는 디스플레이가 반도체를 제치고 국가 기간산업으로 커갈 태세다.

최근 전자업계의 눈길이 디스플레이업체 경영자들에게로 집중되는 것은 이러한 변화를 이미 읽었기 때문이다.

국내 디스플레이산업은 브라운관과 TFT LCD가 주도하고 있다. 인맥 또한 두 산업계에 골고루 퍼져 있다.

브라운관은 지금까지 국내 디스플레이산업을 이끌어온 산업이며 또 당분간 그 주도권을 유지할 산업이다. TFT LCD는 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해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할 산업이다.

두 산업 모두 삼성이 주도하고 있다. 브라운관산업은 삼성SDI(구 삼성전관)가, TFT LCD산업은 삼성전자가 이끈다.

그렇지만 LG는 TFT LCD분야에서 필립스와 연합해, 브라운관 분야에서는 전자가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앞선 상용화를 바탕으로 삼성을 제치려 한다.

두 그룹 모두 디스플레이에 대한 수평 및 수직 계열화가 잘 돼 있는 편이다.

삼성은 SDI(브라운관, STN LCD, PDP, 유기EL 등)와 전자의 AMLCD사업부문(TFT LCD)을 축으로 삼성코닝, 삼성코닝정밀유리와 같은 관계사를 거느리고 국내 디스플레이산업의 맹주임을 자신한다.

LG 역시 전자 디스플레이본부(브라운관, PDP, 유기EL)와 필립스LCD(TFT LCD)를 중심으로 마이크론(디스플레이용 부품)과 아울러 삼성에 도전하고 있다.

결국 국내 디스플레이산업을 이끄는 사람들은 삼성과 LG에 집중돼 있다.

삼성의 디스플레이 분야 사장은 이상완 대표를 제외하고 모두 그룹출신이다. 박영구 삼성코닝 사장과 류경한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은 제일제당 출신, 삼성SDI 대표이사 부사장은 제일합섬과 그룹 비서실 출신이다. 셋 모두 삼성그룹 또는 삼성가(家)와의 인연으로 신임이 도탑다.

김순택 삼성SDI 대표이사 부사장(51)은 그룹의 비서실에 있으면서 삼성의 반도체와 TFT LCD신화를 이루는 일등 공신 가운데 하나다.

김 대표는 90년대 초반 삼성SDI의 전무와 비서실을 거쳐 디스플레이 전반에 대한 이해가 그 누구보다도 높다. 여기에 그룹 비서실에서 쌓은 기획력까지 갖춰 삼성의 디스플레이 전반을 지휘하고 있으며 TFT LCD에서 시작한 삼성의 디스플레이 신화를 완성하는 게 꿈이다.

이상완 전자 대표이사 부사장(50)은 반도체 출신으로 삼성의 TFT LCD사업을 지금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는 전무시절인 97년에 AM LCD사업부장을 맡아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 끈질기게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진행시켜 TFT LCD신화의 꽃을 피웠다.

그에 대한 전자내 신임은 전무 2년 만에 부사장, 부사장 1년 만에 대표이사 부사장이라는 초고속 승진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박영구 삼성코닝 사장(58)은 제일제당 출신으로 물산, 호텔신라, 정밀화학 등의 요직을 거쳐 지난해말 사장 자리에 올랐다.

대부분 50세 안팎인 다른 관계사 사장에 비해 박 사장은 고령인 편이나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한 적응은 그를 따를 경영자가 없을 정도다. 이미 1년전부터 개인홈페이지(http://www.parkyoungkoo.pe.kr)를 운영하고 있으며 색다른 경영 철학으로 늘 재계의 관심을 사고 있다. 그는 특히 인화력 및 친근감으로 차갑게 느껴지기 일쑤인 삼성의 이미지를 따뜻하게 만든다는 평이다.

류경한 삼성코닝정밀유리 대표이사 부사장(55)은 지난 87년 이후 코닝에서 줄곧 일해오다 지난 98년 코닝정밀유리를 맡았다. 과시하기 보다는 실속을 중시하는 타입으로 삼성 경영자 가운데 묵묵히 일하는 인물이다.

삼성에 맞설 LG의 사령탑들도 면면이 화려하다. 대표주자는 구본준 LG필립스LCD 사장(49). 구 사장은 구본무 회장의 형제 중에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해 능력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는 비록 빅딜로 넘겨주기는 했으나 짧은 기간 LG반도체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 카리스마적인 기질을 드러냈다. 그의 「뚝심」은 필립스LCD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나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는 삼성전자의 TFT LCD 아성을 금방이라도 허물 태세다.

일등주의로 임직원들을 몰아붙이거나 「자기 새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전형적인 LG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LG전자 디스플레이본부장인 구승평 사장(58)은 32년 동안 줄곧 한우물을 파 최고 자리에 오른 전문경영인의 전형이다. 브라운관에 대해서 너무 잘 알아서 탓일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백전노장이다. 현장 경영을 중시하며 소탈한 성격으로 임직원들에게는 마치 「형」처럼 여겨지는 구 사장은 그렇지만 강한 리더십으로 디지털TV라는 LG전자의 승부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허영호 LG마이크론 대표이사 부사장(48)은 TV분야에서만 잔뼈가 굵은 경영자로 이제는 TV의 핵심 부품 사업을 맡아 LG디스플레이사업 구조를 떠받들고 있다.

세트에 대한 이해가 높아 8개월 만에 LG마이크론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부품에 대한 공격적인 행보를 이끌어 내고 있다.

대우는 LG, 삼성과 함께 국내 디스플레이산업 역사의 한 줄기다. 그렇지만 그룹 해체로 인해 오리온전기, 한국전기초자 등은 뿔뿔이 흩어졌다.

IMF보약을 먹고 난 다음이어선지 두 회사의 힘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세졌다는 평가다.

김영남 오리온전기 사장(58)은 대우전자 사장을 잠깐 맡았다가 98년부터 오리온전기를 이끌고 있다.

김 사장은 대우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우량한 기업이면서도 모그룹을 잘 못 만나 고생하는 오리온전기를 회생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동안 브라운관사업 구조를 재정비하는 데 주력한 김 사장은 올들어 워크아웃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PDP 등 신규 사업 투자에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서두칠 한국전기초자 사장(61)은 대우전자와 대우전자부품 출신으로 아사 직전인 회사를 맡아 3년 만에 경영 흑자의 신기원을 이룬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 때문에 서 사장은 부실 회사를 맡아 달라는 제의가 끊이지 않는다.

1년 12달 일요일에도 출근, 현장 경영에서 그를 따를 만한 경영자가 없을 정도다. 이제는 벤처기업가들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신경영의 전도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척 달변이다.

삼성전자, LG필립스LCD에 비해 미약하나 현대전자도 국내 디스플레이산업의 또다른 줄기다.

한때 현대전자가 TFT LCD사업 부문을 매각대상에 올려 놓아 흔들리기도 했으나 올초 끌어안기를 선언한 이후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현대는 PDP사업을 최근 분사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LCD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LCD사업본부장을 맡은 최병두 전무(51)는 듀퐁, 포스코휼스 등을 거쳐 현대전자에 합류했으며 삼성, LG필립스LCD 등 「큰 형님」들을 열심히 쫓아가면서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속담의 예외를 만들려 한다.

다른 산업과 달리 디스플레이산업은 산·학·연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특히 TFT LCD산업이 짧은 기간에 급성장하는 데에는 학계와 연구소의 도움이 컸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학자와 연구원들은 한국디스프레이연구조합과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KIDS)를 구심점으로 활발한 산학협동으로 전개해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과 인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종덕 서울대 교수 겸 KIDS 회장(56)과 오명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원장(57) 등 원로급을 중심으로 건국대 김용배, 경희대 장진, 서울대 이신두·황기웅, 서울시립대 박선우, 인하대 박세근, 한양대 권오경 등 수십여명의 교수가 학교 또는 산업계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벤처 창업하는 교수가 늘어나 머잖아 대기업과 전문기업으로 이뤄진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제3세력을 형성할 전망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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