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미 통신시장의 「보안관」 행세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통신시장에서도 「보안관」 행세를 하고 있다. 미국내 범죄 수사 및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FBI는 최근 국가안보를 빌미로 외국 통신업체들의 미 업체 M&A에도 간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통신시장의 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연방통신위원회(FCC)와 법무부 반독점국보다 FBI의 입김이 더 세지고 있다고 최근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FBI는 지난달 독일 도이치텔레콤의 미 이동통신업체 보이스스트림 인수가 성사됐을때 강력히 반발하며 정밀조사에 착수했다. 도이치텔레콤의 지분을 50% 이상 보유하고 있는 독일 정부가 보이스스트림의 통신망을 이용해 미 기업 정보를 탈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FBI는 지난 5월 발표된 일본 NTT의 미 인터넷서비스업체 베리오 인수도 물고 늘어졌다. 일본 정부가 NTT 지분 55%를 갖고 있는 것이 이유였다. FBI는 FCC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인수건에 대해 제동을 걸었고 결국 NTT 일본 본사가 FBI의 감청활동에 간여하지 않고 감청과 관련된 일체의 정보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FBI의 이러한 「월권행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영국의 보다폰은 미 이동통신업체 에어터치 인수를 발표한 후 FBI로부터 몇 가지 의무사항을 전달받았다. 미국내 통화량을 관리하고 통화내용을 녹음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은 미국에 설치하며 이를 책임지는 직원도 미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FBI는 또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미 하이테크 기업들의 통화내용이 영국에 유출될 것에도 우려를 나타냈으며 심지어는 보다폰의 사업을 감독할 수 있도록 담당 FBI 직원에게 정기적인 이동통신기술 교육을 실시하도록 주문했다.

아직까지 FBI가 이러한 간섭을 통해 M&A 자체를 무산시킨 적은 없다. 하지만 FBI가 통신당국인 FCC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 업체들은 FBI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90년대초 미 통신시장 개방정책 수립 당시 FCC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경우에는 FBI의 의견에 따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FBI는 FCC의 결정을 유보시킬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FBI의 간섭에 대한 외국 업체들의 비난은 거세다. 비록 FBI가 자국 시장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자유무역을 주장하며 외국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이 정작 자국 시장은 온갖 이유를 들어 보호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과 SW산업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가진 미국이지만 적어도 이동통신 분야에서는 「공격수」보다 「수비수」에 가깝기 때문에 이러한 비난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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