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의 독서산책>대단절 뛰어넘기

조프리 무어 저 「캐즘뛰어넘기」

성공한 벤처기업들은 이른바 완전제품(whole product)을 만든다. 「창조적 마케팅」의 저자 테드 레빗에 따르면 고객에 대한 약속(가치제안)과 실제 제품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는 것이 보조제품이나 서비스다. 그러니까 완전제품이란 실제 제품에 여러 보조제품과 서비스가 보강된 개념인 셈이다.

어떤 PC회사가 100만원짜리 신제품(통상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가치제안, 즉 고객들에게 구매조건을 제시하며 구매충족요건을 타진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때 고객은 이 신제품이 적어도 『이러이러한 성능을 갖고 있겠지』, 혹은 『모니터는 당연히 포함돼 있겠지』하는 식의 기대를 걸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고객이 기대하는 성능과 서비스는 이뤄지지 않으며 모니터 역시 포함되지 않는다. 통상제품은 PC본체뿐이었기 때문이다. 통상제품에 기능과 서비스를 보강해주는 것이 보강제품이다.

통상제품이 고객의 최소 구매조건을 충족시켜준 것이라면 보강제품은 고객의 구매목적을 최대로 만족시켜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각종 소프트웨어나 프린터와 같은 주변기기들이 대표적인 예다. 고객지원전화와 같은 애프터서비스도 여기에 포함된다.

완전제품을 위한 두번째 요소가 잠재제품이다. 예를 들면 고객이 PC사용에 익숙해져 활용영역을 넓혀가거나 시스템업그레이드 등의 필요성을 느끼는 상황을 감안해서 미리 만들어두는 제품이다. 좀더 용량이 큰 하드디스크나 메모리 증설용 모듈램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신제품이 처음 시장에 도입되어 퇴역할 때까지의 과정은 초기시장(early market), 주류시장(mainstream market), 그리고 말기시장 등 3단계로 나눠진다고 볼 수 있다. 초기시장은 통상제품이, 주류시장은 보강제품과 잠재제품이 각각 출현하는 단계다. 주류시장이 되면 초기시장에서 경쟁하던 통상제품들이 점점 비슷해져가는 현상도 나타난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로 보자면 주류시장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마케팅전략의 초점 역시 통상제품에서 점차 보강제품이나 잠재제품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를 동심원상으로 보면 통상제품은 원의 중심에, 보강제품 등은 원의 바깥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니까 시장이 진행될수록 무게중심은 바깥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무게중심이 더이상 바깥으로 옮겨갈 수 없게 될 때 제품은 시장에서 퇴역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초기시장에서 주류시장으로 진입하는 단계다. 꿈에 부풀어 있던 벤처기업들의 대부분(일반적으로 10분의9라고 한다)이 이 단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무너지고(도산하고) 만다. 그 이유에 대해 조프리 무어는 초기시장과 주류시장 사이에 대단절(大斷絶, chasm)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대단절 때문에 무수히 많은 벤처기업과 첨단 벤처기술들이 깊은 골자기로 굴러 떨어지곤 했다』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벤처기업들이 골짜기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통상제품만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단절을 뛰어넘기(crossing the chasm) 위해서는 완전제품의 연구와 개발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도대체 완전제품의 연구와 개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어는 이것이 『어떤 사람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가라』고 했던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 선장의 말보다는,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서는 그곳에 처음 와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읊었던 T S 엘리엇의 시구절에 훨씬 더 가까운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캐즘뛰어넘기」가 마케팅이론서답지 않게 맛깔스럽게 흥미진진한 것은 바로 이런 비유들이 책 전면에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논설위원 j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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