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기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창업보육사업은 한마디로 실패작입니다. 특히 8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한국통신 건물내 첨단기술사업화센터(HTC)는 간판만 내건 업체가 부지기수입니다. 결국 무늬만 창업보육사업이 된 셈이죠.』
모 벤처기업 관계자가 내던진 이 말은 이제 대덕밸리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해 당시 벤처인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 입주를 고려했을 만한 KAIST의 창업보육사업이 이제 천덕꾸러기로 변모해 가고 있다.
현재 KAIST 신기단에서는 KAIST 캠퍼스내 47개 업체를 비롯, HTC 건물내 76개 업체 등 총 123개의 입주기업에 대해 창업보육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눈여겨 살펴볼 부분이 있다.
지난 98년 말 한국통신으로부터 임차한 HTC 건물에는 입주기업의 30% 정도인 20∼30개 업체가 간판만 달랑 내건 채 실질적인 연구개발 활동은 외부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업체의 문은 대부분 안으로 굳게 잠겨져 있다. 사람이 없으니 확인할 길도 없다. 그저 간판만 걸려 있으니 입주업체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소위 위장 입주기업인 셈이다.
KAIST 신기단은 이같은 사실을 그동안 쉬쉬해오다 급기야 얼마 전 5개 업체에 대해 강제 퇴출명령을 내린 상태다. 뭔가 비뚤어져도 한참 비뚤어져 있다. 과기부에서 100여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책정, 창업보육사업과 연구원 창업지원사업에 쏟아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결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어요. 처음 이 곳에 들어온 업체들은 정부정책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들어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이 곳에 입주한 모 벤처기업 사장은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자신도 입주한 지 얼마되지 않지만 서울로 본사를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건물 자체가 연구개발에 적합한 건물이 못되는데다 마땅한 공용장비 시설 하나 마련돼 있지 않고 창업에 필요한 단계상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어느 누가 이곳에 더 머물겠느냐며 반문한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에 마련된 연구시설로 자리를 옮기는게 수순이라고 귀띔한다. 다만 외부에 인지도가 비교적 높은 KAIST 입주기업 간판은 그대로 둔 채로 말이다.
정부의 지도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최근에는 입주의사는 접어둔 채 아예 과기부에서 지원하는 연구개발 자금을 따기 위해 의도적으로 입주심사를 받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 책정된 연구개발지원 예산만도 50억여원에 달한다는 사실은 업체들의 구미를 당길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 분야의 K업체 박 사장도 과기부의 정책에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이 곳에 입주하면 심사를 통해 연구개발에 필요한 지원자금을 준다기에 나름대
로 많은 준비를 해왔습니다만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정확한 심사기준도 모르겠고 요즘에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과학기술관련 업체만 선정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박 사장은 『애초부터 정보통신부에서 지원하는 창업보육사업에 신청을 했어야 하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이같은 사실을 모두 종합해 보면 입주기업이 떠나는 근본적인 원인이 업체 잘못이 아닌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과기부에서조차 HTC 건물 자체가 벤처 창업보육사업에 부적합한 건물임을 인정한다는 사실만 두고 보더라도 창업보육사업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과기부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98년 말에는 IMF에 따른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마침 정부차원의 벤처육성 정책이 발표된 후 부처별로도 이 사업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부처별 경쟁이 되다보니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창업보육사업을 위해 건물을 짓기에는 당시 재원으로 턱없이 부족한 탓에 대덕단지내 마땅한 건물을 모색하던 중 한국통신 건물을 임차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애당초 한국통신 건물은 일반 사무실용이지 벤처기업의 창업을 지원하기에 적합한 건물이 아니었다.
KAIST 신기단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과기부쪽에 건의했으나 묵살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7억여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마련한 건물이지만 입주업체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예산만 낭비한 꼴이 돼버렸다.
더욱이 입주업체 분야도 KAIST 교수 전공분야에 맞추다 보니 인터넷, 전기·전자, 기계, 바이오 등 특화된 분야 없이 포괄적인 개념이 돼버렸다. 분야별 전문 관리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창업보육사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과기부도 이 곳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는지 한국통신 건물에서 철수해 KAIST내에 새로운 창업보육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고려중에 있다. 늦어도 올 하반기에 착공, 내년 여름쯤 입주한다는 계획이다. 입주업체도 현재 130여개 업체에서 100개 업체로 엄선해 보육사업의 내실화를 기한다는 구상이다. 구태의연한 조령모개식 정부정책의 대표적 사례다.
서서히 거품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창업보육사업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겉으로 내보이는 전시적인 성과보다 내실 있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 벤처기업인들의 중론이다.
<과학기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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