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보육센터 이대론 안된다>2회-중구난방식 보육사업

『도대체 어느 부처에서 창업지원금을 따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부처별로 특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금 성격이 유사한데다 지원금액도 비슷해 어쩔 수 없이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두 곳에 자금 지원신청을 냈던 적이 있습니다.』

K사장은 벤처를 설립한 지 2년도 채 안되는 신예 벤처기업인이다. 자금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지난 98년 말 회사를 차린 K사장은 제품 개발에 필수적인 재원 마련을 위해 각종 정보 루트를 통해 정부 지원자금에 눈을 돌리게 됐다. 자금 사정이 지난해들어 부쩍 좋아진데다 정부의 지원자금이 부처별로 봇물처럼 쏟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K사장은 신청 양식만 달리한 채 산자부와 과기부 두 부처에 자금 신청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사례는 벤처 창업붐이 절정을 이뤘던 지난해 흔히 볼 수 있었던 우리 사회현상 중의 한 부분으로 부처별 과당경쟁에 의한 중복사업이 불러온 결과이기도 하다.

현재 정부의 창업지원 사업은 산자부와 정통부·과기부·중기청 등 부처별로 이름만 달리한 채 중구난방으로 이뤄지고 있다.

산자부의 신기술창업보육사업이나 과기부의 연구원 창업지원사업, 정통부의 정보통신 우수신기술개발사업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사업은 대부분 창업에 애로를 겪고 있는 신기술 보유 예비창업자에게 창업에 필요한 시제품 개발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이 보통이다.

지원금액도 사업자 1인당 1억원 이내의 범위로 부처별로 크게 다르지 않다.

지원사업과 지원자금 성격이 유사하다 보니 「부처별 중복사업」이란 꼬리표가 붙는 것도 당연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각 해당 부처에서는 이같은 사실을 극구 부인한다. 한결같이 부처별로 특성화된 기술분야를 엄격히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는 해명이다. 실무적으로 같은 명목의 중복 지원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중소기업특별위원회에서 부처별 중복지원에 따른 잡음을 막기 위해 접수된 과제별로 중복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후관리 작업을 벌이고 있으니 부처 말대로 중복지원은 상당부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기특위의 이같은 역할이 있는 한 부처별 중복사업이란 근본적인 비난은 면하기 어렵다.

『지난해에는 정부의 지원자금을 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했습니다.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예산을 늘렸기 때문에 그만큼 재원마련이 쉬웠기 때문이죠.』

벤처기업 L사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만큼 정부의 창업 지원자금이 홍수를 이뤘던 때도 없었다』며 부처별 과당경쟁이 어떤 측면에서는 부실 벤처를 턱없이 지원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는 벤처육성정책에 따라 부처별 창업 지원자금을 대폭 확대했다.

산자부는 지난 98년만 하더라도 70억원에 그쳤던 신기술창업보육사업의 예산을 지난해 200억여원으로 늘렸으며 중기청도 창업보육센터 지원사업에 지난해 550억여원, 올해 490억원 등 1000억여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창업지원사업에 쏟아부었다.

과기부와 정통부도 각각 매년 100억여원에 달하는 예산을 책정, 창업지원사업에 할애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으로 우리나라가 IMF를 탈출할 수 있는 큰 모멘텀을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수립에 따른 「예산 늘리기식」의 부처별 과당경쟁은 적어도 피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급격히 불어난 창업 지원자금이 양적인 확대에도 불구하고 내실적인 질적 성장을 가져 왔는지는 곱씹어볼 문제다.

S대학의 박 교수는 「실질적으로 중기청에서 보육센터 건물만 달랑 지어준 채 창업보육사업을 하라니 운영자로서 어려움이 많다』며 『당시 창업보육센터 사업을 안하면 안되는 분위기에서 억지로 학교측에서 무리를 해가며 이 사업을 신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의 정책에 역행할 경우 정부로부터의 각종 지원예산이 끊길 것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창업보육센터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창업보육센터 사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이미 일부 대학에서는 매년 늘어가는 센터운영비 마련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입주기업에 내걸었던 각종 창업 지원정책도 차츰 「공약」으로 변모되고 있다.

중기청도 이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중기청 관계자는 『당초 창업보육센터 신청시 대학측에 건물 설립에 따른 비용만 지원한다는 내용을 확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말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이같은 지적도 일리가 있어 내년부터는 양적인 확대는 지양하는 대신 내실적인 운영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과기부의 창업보육사업 및 연구원 창업 지원사업도 내실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만 무려 120억여원의 예산을 세워놨지만 보육사업에 따른 치밀한 정책 및 전문 관리시스템 부재로 「돈이 엉뚱한 곳으로 새 나가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거꾸로 가는 창업지원정책.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부처간·기관간의 과열 경쟁과 인위적인 벤처창업 드라이브 정책을 지양하는 한편 경제원리에 입각해 부처간 기술분야를 엄격히 선정, 특성화해야 한다는 것이 벤처업계의 중론이다.

<과학기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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