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이것만은 버리고 가자>1회-M&A·제휴 남발

무분별한 기업 인수합병(M&A)와 전략제휴, 가입자수와 매출액 포장하기, 과장된 사업계획서, 내용없는 수출계약, 공모가 부풀리기, 주가관리를 위한 과시성 이벤트, 엉뚱한 곳에 쓰이는 투자자금…. 일부 벤처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이 최근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벤처 재정립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경제를 멍들게 해 온 이같은 재벌기업의 구습을 기술력과 아이디어, 투명한 경영으로 승부해야 하는 벤처기업마저 따라하고 있는 상황은 벤처가 벤처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물론 한국경제의 미래를 벤처기업에서 찾고 있는 많은 국민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줌으로써 적지 않은 후유증을 동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벤처업체들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버려야 할 것들은 반드시 버리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그래야만 현재의 「벤처 빙하기」가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일부 벤처업체들이 저질러온 잘못된 행태 등을 4회에 걸쳐 긴급 점검해 벤처업체들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편집자

지난해 5월 아세아컴퓨터·다윈엔터프라이즈·에이젠텍 등 국내 소프트웨어(SW) 벤처3사가 「라스21」이라는 단일기업으로 합병한다는 발표는 그 때까지 간헐적으로 진행돼 온 국내 벤처업계의 M&A가 본궤도에 오르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라스21은 1년이 지난 올해 5월 M&A 주체들이 완전히 결별함으로써 M&A 당시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에이젠텍의 멤버 16명은 지난 5월 라스21을 나와 「와이즈프리」라는 B2B업체를 설립해 독자노선을 걷고 있으며, 다윈엔터프라이즈는 M&A 발표는 했으나 이후 의견대립으로 아예 합병을 포기하고 다른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밝혀졌다. 라스21은 결국 벤처간 협력모델이라는 의미는 온데간데 없이 아세아컴퓨터가 3사 합병이라는 간판하에 사세만 확장한 꼴이 되고 말았다.

국내 인터넷업계의 대형 M&A 신호탄으로 주목받았던 새롬기술과 네이버컴의 합병도 결국 결렬이라는 상처만 남기고 막을 내렸다. 양사의 합병은 당시 인지도 높은 인터넷 벤처기업간 대규모 합병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결국 기업가치 산정 등의 이견으로 인해 4월말 무산되고 말았다.

라스21은 당시 각개약진해 온 벤처기업들이 규모를 키워 시장에서 성장·발전하는 M&A식의 생존모델을 스스로 채택한 대표사례라는 점에서, 새롬과 네이버컴은 대규모 M&A를 통한 인터넷벤처의 생존방식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

이제 국내 벤처업계에서 M&A는 하루에도 1∼2건씩 터져나올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 만큼 이 가운데 실패사례가 몇건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또 M&A의 실질적인 걸림돌로 주식 스와핑 등 제도적 문제가 손꼽히는 만큼 무조건 다 업체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국내 벤처업계의 잘못된 M&A 관행과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엄밀한 평가가 요구된다. 실제로 이같은 M&A의 실패는 혈맹을 약속했던 합병주체들이 등을 돌리게 되면서 협력과 네트워크가 무기인 벤처업계에서 불신이 쌓이는 것은 물론 내용없는 벤처간 M&A를 양산, 주가 띄우기에 급급하는 식의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M&A보다 수위가 낮긴 하지만 벤처간 전략제휴도 실패할 때는 후유증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유니소프트와 옴니텔의 경우 유니소프트의 지적재산권 분쟁이나 국내 벤처 6개사가 설립한 리눅스 전문업체 앨릭스가 내분으로 해체된 것 모두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경우다.

벤처업계에서조차도 실속있는 전략제휴보다는 대외과시용, 주가관리를 위한 속빈 전략제휴가 절반 이상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아예 일부 업체들은 정기적인 주가관리를 위한 방법으로 매주 한건 혹은 매달 몇건의 전략제휴를 발표하고 있다. 또 이들 가운데는 회사 대표끼리의 면담 한번 없이 서류상으로만 처리하는 경우도 있어 전략제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러한 사례 대부분은 벤처를 가장해 악의적으로 사기를 행하는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뭔가 결과물을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벤처기업의 조급증에서 기인하고 있다. 기업인지도를 높여 투자자금을 많이 받아내고 영향력을 높여 시장에 조기 진입하기 위해서는 M&A와 전략제휴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M&A·전략제휴가 벤처의 생존방식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또 이 과정에서 일부 미숙함으로 인해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으며 약간의 주가관리를 위한 전략제휴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외부에 책임을 돌리기에 앞서 벤처기업도 이제는 성숙한 면모를 보일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당당한 주체임을 자임한다면 재벌기업·굴뚝기업에서나 횡행해온 적당한 눈속임의 달콤함에 길들여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당장의 기업인지도가 올라가고 투자자금이 더 많아질지는 몰라도 이것이 관행화되다 보면 결국은 골다공증에 걸려 기업부실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제까지 나온 실패사례를 거울삼아 전략제휴와 M&A를 벤처성공을 위한 지름길로 잘 활용해야 할 때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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