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품.소재산업 르네상스를 위하여>6회-따로 노는 공동 개발

『대부분의 신제품은 이미 성능과 안정성이 검증된 선진국 제품을 대상으로 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개발됩니다. 고부가 제품이나 특수용도의 제품은 개발해도 판로가 없고 연구개발(R&D) 비용도 막대하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필름캐패시터연구조합의 박영수 사무국장은 국내 대부분의 전자부품업체들이 리버스 엔지니어링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산학연 공동개발」은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상황은 비단 필름콘덴서업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전자부품 제조업체들이 독자적인 제품을 개발하기보다는 선진국 제품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커넥터는 표준화 부품이기 때문에 업체에서 요구하는대로 외부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용 소형 커넥터, 휴대폰용 보드투보드 커넥터, FFC 및 FPC 커넥터 등과 같은 고부가 제품은 중소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벅찰 정도의 많은 비용과 기술력을 요하기 때문에 선뜻 개발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소 커넥터업체인 A사의 이모 연구원도 지금과 같이 단순한 기능의 커넥터만 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대학이나 국책연구소 등의 지원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실토한다.

부품별로 구성된 연구조합 중 대부분은 회원사들의 연구지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단순한 친목단체 내지는 회원사간 이견조정 창구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기업이 개별적으로 정부 자금을 지원받아 개발에 나설 경우 사업성공 후 30%만 상환하면 되지만 조합을 통해 개발할 경우 50%를 상환해야 합니다. 어느 누가 조합하고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한국수정진동자연구조합은 예전의 경우 일년에 5, 6건 총 10억원 이상의 국책연구개발사업을 소화했으나 올해에는 1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유형익 사무국장은 『정부 지원자금의 경우 조합을 채무자로, 개발기업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있어 책임감 있는 연구개발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학에서 수정진동자에 대해 잘 아는 교수를 찾아보기 어려워 산학연구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필름캐패시터연구조합의 박 국장과 수정진동자연구조합의 유 국장은 대학의 연구인력 역시 부품업체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커넥터·수정진동자·콘덴서·저항 등과 같은 기본 전자부품업체들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국책연구소는 전자부품연구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부품업체들 중에서 전자부품연구원과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전자부품연구원은 계측장비 등 많은 연구개발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부품업체들이 이를 활용하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오산에 위치한 전자부품연구원에 다녀오려면 하루가 그냥 지나기 때문에 장비를 빌려쓰는 것도 큰 마음 먹지 않고서는 어렵다』고 유 국장은 지적한다.

더구나 문제는 벤처붐이 일어나면서 산학 연구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업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 벤처붐이 일면서 교수들이 좋은 아이템만 있으면 너도나도 직접 사업화에 나서기 때문에 대학에서 기댈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다 정부의 지원정책상의 문제점도 가세한다. 우선 산학연 공동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기관이 중소기업청·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지방자치단체 등으로 분산돼 있어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며 중복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또 협동연구개발촉진법, 기술개발촉진법, 공업 및 에너지기술기반 촉진에 관한 법률 등 각종 법안이 공동연구개발에 대해서는 포괄적이며 선언적으로만 다루고 있을 뿐이다.

부품업계 관계자들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길들여진 국내 부품업체들의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취약한 산학연 협동기반이 먼저 다져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연구기관과 대학의 기술개발 결과, 기술보유 현황, 산업계 기술수요에 대한 종합정보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이와 함께 다양한 인력 교류 네트워크를 마련, 산학연간에 상호교류가 활성화되도록 해 산업계에 산재한 기술과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IT산업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부품산업의 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기대한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전자부품연구원 김남현 전임연구원 kimnh@nuri.ke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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