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경기의 영향을 받는다면 유명브랜드 PC업체들보다는 조립PC업계가 훨씬 더 심각할 겁니다. 소비자들의 상당수는 조립PC와 브랜드PC의 가격차이가 20만원 이하일 경우 브랜드PC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 저가경쟁이 치열해진 요즘엔 매장을 운영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용산 나진전자월드에서 10년이 넘도록 조립PC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송일석 사장(40)은 최근 지속되고 있는 불황의 심각성을 이같이 얘기하며 『이제 조립PC만의 아성은 무너지고 있다』고 말한다.
용산에서 조립PC 매장을 운영하는 이라면 대부분 이같은 변화의 원인으로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공급되기 시작한 인터넷PC를 지목하고 있다.
인터넷PC는 「국민 정보화기반 확산」이라는 대의적인 차원에서는 성공했다 치더라도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정책으로 인해 업계간 불균형을 심화시켰다는 것이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인터넷PC가 출시되기 전부터 출시후 한달까지는 「구매유보 및 관망세」로 인해 조립PC업계에 한파가 몰아닥쳤고 인터넷PC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부터는 많은 고객을 인터넷PC 업체들에 빼앗겼으며, 대기업들이 PC가격을 내린 다음부터는 가격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예전에는 대기업·중견업체·조립업체 등의 순으로 PC가격이 확연히 차별됐지만 인터넷PC의 출현과 함께 이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해 지금은 대기업이나 중견업체·조립업체 제품의 가격차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심지어 운용체계(OS) 없이 판매되는 어떤 조립PC는 OS를 정품으로 구입해 탑재하면 오히려 중견업체 제품보다 가격을 웃돌기도 한다. 따라서 조립PC업체들이 소비자들의 발길을 잡기 위해서는 거의 노마진 세일이라도 해야 할 형편이다.
이 때문에 최근 용산 등지의 PC유통업계에서는 인터넷PC의 최대 수혜자를 「대기업」으로 꼽는다. 그동안 짭짤하게 마진을 챙겨왔던 대기업들이 인터넷PC 출시이후 인터넷PC와 거의 똑같은 사양을 갖춘 제품을 비슷한 가격대에 내놓음으로써 인터넷PC마저도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고 결국은 대기업에 좋은 일이 되고 있다는 것.
결국 조립PC업체들은 지난 4월 중순 이후부터 판매량이 절반이하로 줄어 매장 유지비를 벌어들이기에도 빠듯한 실정이다. 게다가 최근 세진이 부도나면서 연쇄부도를 우려한 업체들이 자금줄은 죄고 넘치는 재고는 시장에 덤핑처분하고 있어 마진확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경기불황과 세진한파는 시간이 지나면 호전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앞서 언급한 대기업·중견업체의 저가경쟁에는 속수무책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몰도 매출 부풀리기 차원에서 PC를 노마진 상품으로 기획하는가 하면 초저가에 덤핑판매하고 있어 아직까지 오프라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조립PC업계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전자상가에는 요즘들어 부쩍 조립PC 매장수가 줄고 있다. 특히 브랜드PC를 취급하지 않고 조립PC만을 취급해왔던 순수 조립PC업체들은 주변기기 및 부품유통으로 사업방향을 선회하거나 브랜드PC를 취급하기 위해 대리점 계약을 맺는 등 발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송일석 사장은 『10년이 넘도록 조립PC만을 해왔지만 이제는 더이상 경쟁력이 없을 것 같아 브랜드PC도 함께 취급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조립PC업계에 위기의식이 확산되자 용산전자단지상점가진흥조합(이사장 권영화)을 중심으로 조립PC도 브랜드PC 못지않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공동브랜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에 얼마나 많은 업체들이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말로는 「고사위기」다 「조립PC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런 대안을 마련할 생각들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계속해서 유통망을 확충하고 있고 인터넷쇼핑몰과 가전양판점도 PC유통분야에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조립PC업계가 어떤 대책으로 활로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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