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이상희 위원장(61·한나라당)은 요즘 무척 바쁘다.
국회 일정, 당 공식일정이 없는 시간에 그는 늘 사람들을 만난다. 20, 30분 단위로 정부 관료, 출연연, 벤처기업가, 기자가 그의 사무실을 찾아온다. 그것도 모자라면 강연회, 세미나, 공청회 등 각종 행사가 그를 기다린다.
이상희 위원장을 만나려면 국회 의원회관으로 찾아가야 한다. 국회 본관에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실이 있지만 그는 의원회관을 고집한다. 오랫동안 입었던 옷처럼 의원회관이 입법활동에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 그를 만나려면 좁은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를 만나고 나온 사람들의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그의 진지함 때문이다. 그의 사무실 밖으로 가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상임위원들과 자주 접촉할 수 있는 의원회관이 제게는 편합니다. 이 곳에서 틈나는대로 여야의원들을 만나 상임위원회 활동에 대한 의견을 듣습니다. 또 본관과 달리 정보통신, 과학기술 관련 전문가들이 방문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어 좋습니다.』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면서 겸연쩍게 웃는다. 웃음에는 장난끼가 가득하다. 그의 웃음은 순식간에 국회의원이라는 권위와 형식을 무너뜨리는 묘한 마력을 갖고 있다.
이 위원장의 「사람만나기」의 지론은 폭넓은 확장성을 갖고 있다.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 문제점을 듣고 해결점을 찾는 것이 국회의원의 일이라 그는 확신한다.
그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국회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우선 국회 헌정 사상 처음으로 상임위를 국회 밖에서 열었다. 그것도 여야 대치로 파행국회가 이어지던 시기에 여야의원 모두가 테헤란밸리에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상임위 활동을 펼쳤다.
국회 밖에서의 상임위는 「날치기」를 우려해 원천적으로 개최가 금지돼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여야 만장일치로 상임위 활동을 테헤란밸리에서 벌였다. 초당적인 여야의 협조덕분이었다. 이 때문에 과정위는 현장을 찾아가는 입법활동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이번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이 크다고 판단, 다른 벤처밸리는 물론 실리콘밸리의 상임위 활동도 기획중이다.
『이번 활동을 통해 국민들과 벤처기업들이 상임위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깨달았습니다. 우리 상임위는 특정 사안에 대해 국회 밖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국회법개정안을 여야 공동발의로 제출할 예정입니다.』
최근에 화제를 모은 사건은 여야 상임위 무파행 선언이다. 여야의원 모두 상임위 활동에 대해 당리당략을 벗어나 생산적인 국회활동을 벌이자며 「무파행 선언」을 다짐했다. 여야가 대치중이더라도 과정위만큼은 생산적인 국회활동을 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과정위 소속위원들은 모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전문가 집단입니다. 재선급 이상 의원들은 과정위에서 입법활동을 벌인 분들이고 초선의원들은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 위원장이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위원장은 「선진국을 능가하는 경쟁력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 관련법 체계를 정립하자」는 데 상임위의 목표를 두고 있다.
그래서 구상중인 것이 소위원회 활동 강화다. 상임위 소속위원들마다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입법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 소위 구성의 핵심이다.
소위가 구성될 경우 상임위원들의 잠재적 능력은 소위를 통해 극대화된다. 상임위에 있는 전문위원들이 내놓는 법제 검토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와 과제를 갖고 입법활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그가 구상하는 소위에는 IMT2000, 벤처기업 육성 등이 포함돼 있다. 그 과정에 여당의 반발도 예상된다. IMT2000 소위의 경우 여당쪽에서 「로비 창구로 활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IMT2000 소위의 경우 정부의 사업자 선정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닙니다. 입법활동에 필요한 기술, 서비스, 정책을 검토하자는 것입니다. 다소 오해가 있지만 소위 구성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위원장은 전문소위 구성이 상임위 전문성 확보에 필수적인 요소라 여긴다.
이 위원장이 기획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아이디어는 과정위를 첨단 위원회로 만드는 것이다. 상임위에 LAN을 포설하고 노트북을 이용해 현장에서 각종 DB를 공유할 수 있는 첨단 상임위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아마 과기처 장관,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장을 거치면서 쌓아온 경륜에서 기인한 아이디어라 여겨진다.
『생산적인 국회, 열린 국회를 만들기 위해 상임위 활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과정위는 기존의 정형화된 틀을 탈피해 창조적인 상임위를 열어갈 것입니다. 과정위 위원 역시 전문가, 시민단체 등과 함께 생산적인 입법활동과 정책활동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이 위원장은 최근 일고 있는 닷컴·벤처위기론에 대해 자신만의 고유한 분석틀을 갖고 있다.
그는 현재의 벤처기업의 위기를 「양적 성장에 따른 반작용」이라고 분석한다.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으로 벤처기업 숫자는 늘었지만 기술력, 마케팅 능력을 갖추지 못한 벤처기업들이 양산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붐, 인터넷 주식공모, 코스닥 벤처열풍 등으로 반벤처 정서가 확산되는 바람에 이 같은 현상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인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부가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에 대해 사후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에 투자지원정책을 강화하면서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판로를 개척해줘야만이 벤처열기를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 위원장은 국회도 각 부처별로 분산된 벤처지원책을 검토, 통합된 목소리를 내야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벤처특별법도 개정대상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21세기의 테마는 정보기술과 생명공학기술입니다. 이런 고도화된 사회를 이끌려면 관련 법체계에 대한 입법활동이 필수적입니다. 향후 과정위는 지식정보사회에 맞는 법적 뒷받침, 전자정부 구축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역점을 둘 것입니다.』
이상희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이 꿈꾸는 21세기 상임위의 모습이기도 하다.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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