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음식이나 패션·음악·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하나로 만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새천년으로 접어들면서 문화·예술분야를 넘어 전자제품에도 이같은 퓨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전자제품의 디지털화·네트워크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예전에는 개별제품으로 존재했던 전자제품들이 점차 복합제품화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PC에 TV 및 오디오 기능이 내장되는가 하면 가전제품인 TV나 냉장고에 PC의 기능이 덧붙여지고 휴대전화에 오디오와 인터넷기능이 추가되는 현상이 그것이다. 여기에 네트워크망이 가미되면서 복합화 현상은 더욱 복잡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현상은 다양한 분야의 업체들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협력토록 하는 풍토를 조성하고 있다.
인터넷TV 사업은 이같은 흐름을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사업모델이다. 가전업체는 물론 통신업체와 건설업체 및 방송·문화·게임·금융·증권·유통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업체들이 직간접적으로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에 참여하는 한국통신의 경우 아직도 이같은 시대 흐름을 도외시한 채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행동을 자주 보여주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관련부서들간 인터넷TV 사업을 주도하려는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면 국내 업체들과 협력관계를 맺고서도 이와는 별도로 미국 제품을 거액의 로열티를 주고 들여오기로 해 국내 업체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또 기존 전화사업에 영향을 준다며 협력업체들에 인터넷TV 서비스 가운데 인터넷 전화는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인터넷TV용 세트톱박스도 신규 ADSL가입자에게만 공급하고 기존 가입자에게는 공급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물론 한국통신도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기업이다. 또 한국통신이 인터넷TV 사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측면도 많다. 특히 대부분 벤처기업인 협력업체들의 제품 신뢰성 및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철저한 품질관리를 실시하고 있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통신이 좀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은 어떤 기업이라도 독불장군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협력의 시대라는 점을 다시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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