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부품업체들도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남들이 비교적 꺼리는 부품사업에 뛰어든 신생 벤처기업 네스 김선욱 사장의 지적이다.
최근 전자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면서 부품 및 소재 산업의 환경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전자제품의 디지털화와 휴대화·멀티미디어화가 급진전되면서 디지털 부품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WTO·ITA 등 국제기구의 영향력 확대와 전자상거래 확산 등에 힘입어 세트업체의 글로벌 부품 소싱도 확산되고 있다.
또 다양한 복합제품의 출현과 소형화 그리고 소비자 욕구의 다양화로 전자부품은 갈수록 원칩화하고 있으며 소량·다품종화돼 생명주기가 짧아졌다.
그동안 전자산업의 성장을 주도했던 가전산업이 점차 시장확대의 한계에 부딪치고 정보통신 분야가 전자산업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부품 수요도 가전용 부품 중심에서 정보통신기기용 부품 위주로 달라졌다.
이러한 산업환경의 변화는 국내 부품 및 소재 업체들에 심각한 위협인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던져준다.
『세계 유수의 세트업체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한 부품을 구매하고 있어 국제경쟁력을 갖춘 제품만 개발한다면 신규 시장진입은 오히려 예전보다 쉬울 수도 있습니다.』
광대역 통신용 반도체를 개발, 세계적인 ASIC업체들과의 일전을 준비중인 파이온 노갑성 사장의 말에는 부품 및 소재산업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달라진 산업환경은 대부분의 국내 부품업체들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
우선 디지털 및 원칩화 부품의 수요가 증가하고 부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신제품 개발능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시장논리에 따라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트업체의 글로벌 소싱전략은 부품가격의 인하로 연결됨에 따라 생산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아무리 오랫동안 동고동락해 왔다 하더라도 세트업체로부터 언제라도 「팽」당할 각오을 해야 한다.
특히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고 세계화가 급진전되면서 한국 시장을 노리는 외국 부품업체들의 파상공세가 강화돼 국내 부품업체들의 안방마저도 남의 손에 내주는 상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이처럼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국내 부품업체들의 대응전략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부분의 국내 부품업체들은 급변하는 산업의 패러다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하루하루를 넘기는 데 급급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제살깎기식 가격덤핑이 관행처럼 돼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부품을 공급해야 합니다. 라인을 멈출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저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처럼 들릴 뿐입니다.』
코일부품을 생산하는 중소 부품업체 S사장의 푸념은 국내 부품업체의 현주소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신생 벤처기업과 기존 부품업체들 가운데 신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확대와 e비즈니스 강화, 글로벌 경영체제 구축 등 나름대로 무한경쟁시대와 디지털 산업환경에 대응하고 있는 업체들이 있지만 극히 일부다.
이같은 국내 부품업계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부품업계뿐 아니라 정부와 관련기관이 공동 대응전략을 수립,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우선 품목별 개발전략이라는 측면에서는 잠재시장규모가 큰 품목을 선정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품목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기기와 같이 수출주도 제품용 부품의 경우 국산화가 시급한 우선품목을 정해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디지털TV를 비롯해 인터넷 및 미디어 부품 등 산업전반에 파급효과가 큰 차세대 부품에 대해서는 공동개발전략이 바람직하다.
제도 및 인프라 구축 측면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부품·소재 공용화 및 표준화를 추진해야 하며 부품업계가 세트업체의 글로벌 아웃소싱에 대응할 수 있게 산업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부품업체들이 하루하루를 넘기는 데 급급해하며 다시는 헤어나기 힘든 수렁에 빠지지 않고 「디지털과 무한경쟁, 글로벌 아웃소싱」 등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산업의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려면 정부와 관련 기관 및 업계 관계자들이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성욱기자 sw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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