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의 독서산책>세련된 정치경제학 원론

「디지털시대 다시 읽는 자본론」

가와카미 노리미치 지음

70년대에서 80년대 전반기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라면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갖는 주술적 혹은 현학적 매력을 실감해봤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국내에서 「자본론」관련 서적의 출간이 아예 금지돼 있었다. 때문에 광화문이나 신림동의 지하서점에서 불법복사된 일본어판을 사서 읽는 것이 「자본론」을 대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두가지의 전제가 필요했다. 하나는 어느 정도의 일본어 독해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복사판의 거의 대부분이 「자본론」이 아니라 그 해설서나 요약서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운데는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우치다 요시히코의 「자본론 세계(資本論の 世界)」와 같은 책들도 있었다.

이런 여파로 당시 대학가에는 「자본론」 독해용 간이 일본어 문법서가 유행하기도 했다. 필자 역시 이 문법서를 구해보았지만 결국은 일본어가 따라주지 못해 제대로 읽은 해설서 한권 없이 대학시절을 보내고 말았다.(사실은 그 내용의 난해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수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자본론」을 읽고 싶었던 필자의 목적 역시 분명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러 의견 중에는 「자본론」에 대한 당시 학생들의 열정이 그 난해한 내용과는 무관하게 시대적 좌절감이나 무력감에 대한 하나의 표현(catharsis)양식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근 20여년만에, 그러니까 산업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이행해가는 시점에서 다시 「자본론」을 대한 필자의 소감은 참으로 소박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 도그머티즘쯤으로 알고 있었던 「자본론」이 사실은 정치경제학 가운데서도 고전 중의 고전이었음을 물경 20년만에 알아낸 것이다.

변명이겠지만 그런 무지는 필자의 탓만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자본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유난히도 척박했던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에 그 책임을 돌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디지털시대라는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지금에 와서 이미 100여년 전에 쓰여진 「자본론」이나 여기에 기초한 정치경제학이 다시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의 경제는 자본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경제다. 생산이나 유통이 기업에 의해 이뤄진다지만 그 실체는 어디까지나 자본의 증식활동이다. 그렇다면 자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윤을 낳는가. 그런데 자본을 이해하려면 우선 그 밑천이 되는 화폐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령 화폐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면 어째서 그런가. 또 화폐가 상품생산과 상품교환의 발달과정에서 발생했다면 상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자본의 이해는 그래서 사회관이나 세계관의 해석과도 맞물려 있는 것이다.

자본의 또 다른 측면을 보자. 자본주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자본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본의 속성은 본질적으로 기생성과 천민성에 근거한다고 한다. 근자에 세계 경제시스템이 자본주의로 단일화되면서 인류의 위기가 논의되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인류의 위기가 회자돼 역으로 자본의 위기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시점에서 「자본론」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론」은 역시 딱딱하고 난해한 고전이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자본론」관련 참고서나 요약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19년간 마르크스경제학을 강의했다는 가와카미 노리미치의 「디지털시대 다시 읽는 자본론」도 그런 책들 가운데 하나일런지 모른다.

그렇지만 가와카미의 「자본론」에 대한 해석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자본론」이 무려 100여년 전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그 현대적 유용성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접근방식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자본론」의 목차를 따르지 않고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부분부터 기술돼 있다.

역자인 최종민 교수(전북대)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방법도 돋보인다. 그가 책 제목을 원제인 「자본론 교실(資本論の 敎室)」을 마다하고 「디지털시대 다시 읽는 자본론」으로 정한 것은 저자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그는 필자와 같이 「자본론」의 주술적·현학적 매력에 빠진 경험이 가진 독자들의 의중도 꿰뚫었을 것이다.

<논설위원 j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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