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업계의 최고경영책임자(CEO)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벤처캐피털은 벤처기업 발굴·심사·투자·사후관리에 이르는 벤처투자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전문 CEO의 활약이 어느 업종보다 돋보인다. 그러나 최근 이들 전문 CEO들이 대주주와의 견해차이로 「자의반 타의반」 CEO 자리를 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인 KTB네트워크에서 17년동안 맹활약하다 한국드림벤처캐피털(현 미래에셋VA)의 전문 CEO로 자리를 바꾼 전일선 사장은 최근 대주주인 미래에셋그룹측과의 견해차이로 이 회사를 떠났다. 전 사장은 KTB 시절 과감한 투자로 명성을 높였으며 1년 가까운 미래에셋VA 사장 재임기간에도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전일선 사장과 함께 KTB 초창기 멤버였던 한국IT벤처투자의 연병선 사장도 2년여에 걸쳐 탁월한 감각으로 한국IT벤처를 선도 벤처캐피털로 올려놓은 주인공. 연 사장은 그러나 대주주인 한국통신측과 의견차를 보이는 등 전문 CEO의 한계를 드러내며 고비를 넘지 못하고 최근 물러났다.
연 사장은 KTB 시절에 구축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박자 빠른 감각적인 벤처발굴, 투자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국내 1호 정보통신(IT) 전문 벤처캐피털인 한국IT벤처투자의 강점을 살려 정보통신 부품·장비·시스템 분야의 공격적 투자를 통해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IT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잇따라 대박을 터뜨렸다.
이들의 퇴임은 그동안 두 사람 모두 벤처캐피털업계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지명도를 쌓은 전문 CEO의 상징적 인물들로 평가돼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벤처캐피털 분야가 예상외의 고수익을 내는 유망업종으로 부상하면서 대주주들이 욕심이 많아져 목소리를 더욱 높이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최근 벤처캐피털업계의 전문 CEO들의 이동이 심하다. 물론 대개는 전문 경영인으로 터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스스로 「소유」와 「경영」을 모두 망라하는 독립 벤처캐피털회사를 운영할 목적으로 스스로 회사를 떠나는 경우다. 그러나 회사 규모가 커지고 대주주들의 경영참여가 잦아지면서 나타나는 대주주와 전문 CEO간의 마찰도 무시못할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 CEO들이 대주주에게 경영권 보장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SK 계열 창투사인 인터베스트 정성인 부사장이 대표적인 예다. KTB 출신으로 현대기술투자를 거쳐 인터베스트의 벤처투자부문을 전담하고 있는 정 부사장은 설립 당시 대주주측에게 경영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 벤처캐피털 전문 CEO들이 대주주측과의 불협화음으로 중도에 하차하는 사례는 앞으로도 크게 늘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벤처캐피털에 자본을 대는 대주주들이 점차 단순 자본이득(캐피털게인) 외에 벤처비즈니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져 경영 참여를 늘리는 탓이다.
벤처캐피털 전문 CEO들은 『대주주가 대기업이나 IT 전문업체인 경우 벤처네트워크 구축 차원에서 벤처투자에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전문 CEO들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며 『그러나 벤처캐피털은 무수히 많은 선택과 결정을 반복하는 비즈니스로 전문 경영인의 권한을 충분히 보장해줘야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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