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부품업체들은 선진국의 품질에 밀리고 후진국의 가격에 치이면서 세계시장에서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최근 빗장을 푼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국가들이 값싼 인건비를 무기로 세계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이같은 상황은 이미 예견돼 왔던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자부품업체들이 경쟁력의 열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상황에 미리 대비해 왔던 일부 기업들은 IMF를 겪으면서도 체질을 강화하고 오히려 세계시장 점유를 확대하면서 세계 일류 기업으로의 입지를 더욱 굳혀가고 있다.
현재 반도체·산업전자·부품 등의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제품가운데 월드베스트의 반열에 들어선 품목은 D램,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CRT, 모니터, CD롬 드라이브 등을 비롯해 10여개 품목. 현재 선두권을 바짝 뒤쫓고 있는 SAW필터, MLCC 등의 유망품목까지 포함시킨다면 30여개에 달한다.
아직까지 월드베스트 품목은 10여개에 불과하지만 이들 품목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지난해 D램·CRT·TFT LCD 등을 중심으로 한 전자부품 산업은 약 43조원의 총생산액을 달성, 지난 98년에 비해 12.6%나 성장했다. 이 중 D램의 생산액은 전체 총생산액의 20%가 넘는 80억달러(약 9조6천억원)에 달해 D램이 우리나라가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생산대국이 되는 데 큰 기여를 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더욱 많은 품목을 월드베스트 반열에 올려 놓기 위해서는 DVD의 상용화(2001년), 초고속 인터넷의 본격화(2002년), IMT2000의 상용화(2003년), 디지털TV의 본격보급(2004년) 등과 같은 산업추세에 맞춰 발빠른 대응을 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전자부품연구원의 김춘호 원장은 『앞으로 시스템온칩화 추세가 가속화돼 복합부품이 시장을 지배하고 일반부품은 소형화와 고적층화가 더욱 진전될 것』이라며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세계의 가격정보가 오픈돼 가격경쟁이 더욱 심해지며 업체간 기술경쟁 못지 않게 표준 주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세계 전자부품 시장은 지난해 1570억달러에서 올해 1680억달러로 7%의 비교적 낮은 성장이 예상되지만 2001년 이후에는 부품 수요가 폭발하면서 연평균 10%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돼 2005년에는 236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주요 전자부품 가운데 다층기판·칩부품·이동통신부품·DSVR·LCD 등이 성장을 주도하며 대부분의 부품들이 10% 이상 고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장밋빛 전망은 이동통신·블루투스·IrDA 등과 같은 디지털기술이 급성장함에 따라 부품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기술의 경우 기존 가전제품에 비해 라이프사이클(3년 정도)이 짧기 때문에 지속적인 신규 수요를 창출, 시장포화를 겪고 있는 기존 가전산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디지털기술이 이미 선진국과 동등하거나 앞선 수준에 올라서 있기 때문에 이같은 시장상황이 우리나라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삼성과 LG는 지난 98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TV를 양산, 미국과 영국에 수출했으며 디지털캠코더·VCR 등도 이미 개발이 완료돼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앞으로 호재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세트업체들의 프리마케팅이 활성화하면서 부품가격이 함께 인하되고 글로벌 경쟁체제에 따라 경쟁이 심화되며 기술료지급이 늘어나는 등의 적지 않은 위협요인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전자부품연구원에서는 전세계 전자부품 시장의 큰 성장이 예상되지만 부품별로 10∼30%의 가격인하가 이뤄져 금액 기준으로는 성장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는 그동안 교환·전송기술, 이동통신 기술, 고밀도 저장기술, ASIC 기술, 반도체 기술, 디스플레이 기술, 2차전지 기술 등 대부분의 핵심기술의 경우 해외에 의존해왔으며 제품별로 가격의 10% 이상을 기술료로 해외 선진국에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전문가들은 메모리 반도체, TFT LCD, PCB, 2차전지, 소형 정밀 모터 등의 품목은 이미 우리나라가 가격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세계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이들은 디지털 정보가전 품목(영상처리 및 이동통신용 칩세트), 차세대 디스플레이(유기EL·PDP), 광부품(DWDM·광통신모듈·수동광부품) 등은 시장 형성 초기의 성장 유망부품이며 부가가치가 높은 미래형 핵심부품으로 시장선점이 가능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최근들어 국내에도 인터넷 열기가 몰아닥쳐 닷콤 기업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제조업체, 특히 전자부품업체들은 서자와 같은 설움을 겪고 있다.
더구나 기업간 전자상거래 확산으로 전자부품업체들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전자부품업체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월드베스트전략이 필요하다. 이제 전자부품업체들은 세계시장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술과 경영능력을 갖춰야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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