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콘텐츠의 세계>(7)비디오 게임 산업의 현황과 과제-규제의 시작

한국게임물유통협회 우인회 회장(woo@kiema.or.kr)

우리나라에 가정용 게임이 소개되어 유통된 지 10여년이 지난 90년대 중반까지 게임산업은 순전히 시장의 논리만으로 모든 것이 형통했다. 모든 상품은 소비자가 결정했고 관련업체들은 수요에 따라 움직였다. 지금보면 놀라운 일인지 모르지만 규제가 없어도 게임으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은 없었다.

당시에 이미 우리 게임산업은 호황 속에서 나름대로 자본을 축적했고 게임제작의 분위기가 움트고 게임문화도 싹트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큰 문제없이 게임시장이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적 시각이 문제였다. 지금도 상당부분 우리사회에 잔존하는 이같은 시각이 그 당시에도 심각했다. 게임은 불량 청소년들이 컴컴한 오락실에서나 하는 건전하지 못한 오락이며 가정용 게임은 아이들의 공부나 방해하고 건강만 해친다며 게임을 술이나 담배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우리나라 가정용 게임시장은 그야말로 자유업으로서 누구나 이 업종에 뛰어들어 능력껏 일할 수 있었으나 95년 12월에 개정된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음비법)로 인하여 모든 전자영상오락물(주로 컴퓨터 게임이나 가정용 전자게임이 이에 해당됨)이 「새영상물」로 분류됨으로써 제조·수입·광고·판매 등 모든 단계에 걸쳐 엄격한 법의 규제를 받게 된다.

음비법 시행 이전만 해도 업체들간에 공정한 게임의 룰이 유지되다가 이때부터 법을 지키는 업자와 법을 무시하는 업자 사이에 경쟁력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음비법에 따라 모든 전자게임은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고 저작권에 관한 내용확인을 받아야 하며, 수입품은 추가로 수입추천을 받은후 통관까지 해야만 시판이 되기 때문에 합법적인 제품(정품)을 판매하기까지는 자연히 많은 시간과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절차를 무시한 밀수나 불법복제의 경우(비품)에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절약된다. 비품은 심의료, 샘플료, 각종 수수료, 관세, 부가세, 면허세도 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얼마나 경쟁적인가.

엄정집행의 의지가 없거나 적절한 시행방법을 모르면서 규제만 양산해 놓으면 좋아하는 사람은 부정한 공무원이나 배짱좋은 업자뿐이다. 오늘날의 「음비게법」이 바로 이런 꼴이 된 것이다. 실제 사정을 잘 아는 업계의 조언이나 관련단체와 협의해 지속적인 사전계도와 꾸준하고 조직적인 지도단속을 한다면 충분히 불법관행을 예방, 관련업체들이 법이 정한 룰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해 능력있는 자가 성공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이 우리 업계에도 정착될 수 있으련만 그저 방치만 하고 있다가 한번씩 생각나면 나서는 무계획적이고 일회성에 그치는 단속 때문에 실제적인 단속의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애꿎은 전과자만 양산하는 그야말로 음비법이 전과자 양산법이 됐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오게 했다.

불법을 막으려면 합법공간을 키워야 한다. 합법공간이 적으면 적을수록 불법공간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다. 이제 우리도 부적절한 규제는 과감히 혁파해 합법공간을 크게 넓히고 필요한 규제는 엄하게 지키게 하여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공정한 경쟁의 룰이 유지되도록 한다면 우리도 선진국이 되고 능력있는 개인과 기업이 나날이 발전해 국제사회로 뻗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이런 작지만 중요한 하나의 전기가 우리 업계의 음비법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행히 최근 문화관광부가 주도해 음반·비디오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을 전향적인 방향으로 개정하기로 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음비게법」의 개정방향을 보면 게임인의 한사람으로 깊은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청소년문화에 부정적인 요소로만 보여왔던, 그래서 십수년동안 규제와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던 우리 게임물이 21세기가 되어 비로소 하나의 문화장르로 인정받고 나아가 첨단산업의 중추로 당당히 대접받게 됐다.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최대 장점은 균등한 기회속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능력있는 자가 보상받게 되는 시스템에 있다. 개인과 기업은 주어진 장에서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게임을 하고 정부는 공정한 엄파이어 역할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정부가 심판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면 게임은 엉망이 되고 엉뚱한 사람이 승자가 되거나 능력있는 자가 탈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된다. 게임마다 이런 공정경쟁이 무시되는 현상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세계속에서 우리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국가 대표선수 선발이 엉터리면 올림픽에서 매달을 못따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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