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패러다임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속의 또다른 미국, 실리콘밸리. 이곳은 철저하게 인적 네트워크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다. 인적 네트워크 없이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고급 정보를 활용할 수 없어 비즈니스 자체에 어려움이 많다. 특히 타이밍이 중요한 벤처비즈니스의 특성상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의 발달로 세계가 일일생활권안으로 들어오고 있는데도 최첨단 기술의 중심에서 실리콘밸리가 이처럼 오프라인의 인적 네트워크에 좌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이민족들이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적 특성과 정보가 곧 돈이 되는 벤처비즈니스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KTB네트워크 미주지사를 맡고 있는 윤승용 소장은 『실리콘밸리는 모든 비즈니스가 네트워크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이 안에 들어가지 않고는 비즈니스를 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기술·사람·비즈니스 등 모든 정보가 네트워크를 통해 움직인다』고 말한다.
때문에 실리콘밸리로 진출하는 세계 각국의 벤처기업가들은 인적 네트워크 구성과 이의 활용에 비즈니스의 사활을 건다. 네트워크의 친밀도를 높이는 가장 큰 힘은 민족성이다. 중국과 이스라엘의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있는 것도 유대인과 화교의 강력한 민족적 동질감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년대부터 이민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실리콘밸리속의 한국인 네트워크도 아직은 미약하다. 그러나 최근들어 벤처붐을 타고 국내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로 진출하고 해외 비즈니스가 본격화되면서 활성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인상공회의소와 한국벤처협회지부, 창업보육센터 등 관련 기관은 물론, 현지 주재 상사인들의 모임, 특정 대학 동문모임, 동종업종 모임, 대학교수 모임 등 다양한 종류의 네트워크가 잇따라 출현하고 있다.
특히 지난 97년 말 발족한 재미기업가협회(CASE·회장 이계복)에는 현재 수백명의 한국계 벤처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CASE는 다소 형식적인 기존 단체와 달리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가나 엔지니어, 벤처캐피털리스트, 대학교수, 컨설턴트, 법조인, 현지 교민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가세해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의 실질적인 정보교류의 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지에 진출하는 국내 벤처기업에 정보를 제공하는 컨설턴트들도 계속 늘고 있다. 국제기술평가의 김완희 박사를 비롯, 한국기술투자 부사장 출신의 김흥준 변호사, 리테크놀로지 벤처법률컨설팅의 아이크 리 사장, 한국소프트인큐베이팅센터(KSI) 소장 출신으로 최근 얼리엑시트닷컴을 창업한 박승진 사장 등이 그들이다.
최근에는 숭실대 부총장 출신으로 지난 2월 스탠퍼드대 교환교수로 나온 오해석 교수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 범 정보기술(IT)인 모임인 「실리콘밸리코리안네트워크」 결성이 추진중이다. 이 네트워크는 앞으로 서울과 연계, 한민족 벤처네트워크로 발전할 예정이다. 오해석 교수는 『한국의 벤처기업이 실리콘밸리에서 제대로 정착, 비즈니스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코리안네트워크의 응집력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실리콘밸리=이중배기자 j 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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