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의 영화읽기> 김기덕 감독의 「섬」

저예산을 들여 가히 「전투적」이라 불릴 만큼 영화를 만들던 김기덕 감독이 비교적 안정적인 자본력을 끌어들여 만든 영화. 그러나 그것은 그가 스스로 제작비를 구하기 위해 1인 3역 이상을 해내고 배급망을 뚫기 위해 동분서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 「섬」은 이미 전작들을 통해 저예산이라 불리는 영화의 스타일을 만들었던 또 하나의 「김기덕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의 영화엔 늘 세련되게 정제되지 않은 에너지가 넘쳐나고 그것은 분출되지 못한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꽤나 매력적일 수 있다. 앞선 세편의 영화에서 이미 그가 생산해냈던 인물들과 이미지들은 「섬」에서도 여전히 집요하게 살아 숨쉰다. 그것은 기대감과 동시에 실망스러움을 전해주는데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벗어 보이는 당당함 이면에 숨어있는 공식화된 매너리즘 때문이다.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인간의 이중적 이미지들은 「섬」에서도 역시 맹렬하게 그 야수성을 드러낸다. 저예산 영화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서 출발했기 때문인지, 혹은 고립된 인간의 모습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공간은 영화의 주인공 만큼이나 하나의 캐릭터를 부여받는다. 마음 속으로는 늘 동경하지만 곧 도망가버리고 싶은 고립된 섬의 이중성을 감독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비유한다.

세상과 격리된 듯한 낚시터 섬. 말이 없는 주인 희진은 음식과 몸을 팔며 사는 여자다. 어느 날 애인을 살인하고 도망쳐온 현식이 이 낚시터로 찾아들고 삶을 체념한 듯한 그의 모습은 희진의 관심을 끈다. 희진은 자살하려고 하는 현식을 구해내고 이 일을 계기로 둘 사이엔 교감이 흐른다. 며칠 뒤 낚시터에 은둔중이던 지명수배자가 도주를 하던 중 경찰의 총에 맞아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지켜보던 현식은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낚싯바늘을 입으로 삼켜 자해를 시도하고 경찰을 따돌린 희진은 현식의 고통을 섹스로 치유해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식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희진의 사랑은 예기치 못한 살인을 부르게 된다. 그녀의 집착을 견디지 못한 현식은 떠날 결심을 한다. 그러나 희진의 자해로 현식은 다시 뱃머리를 돌린다.

남자와 여자를 얘기하는 감독의 시선은 파스텔 톤의 안락함과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혐오스러움이 극단적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그 두가지는 마치 인간의 양면성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물 역시 현식에겐 목숨을 구해주는 생명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배설물을 쏟아붓는 장소다. 「섬」은 사랑에 대한 감독의 취향을 확실히 읽어나가게 만드는 매력적인 영화이긴 하지만 관객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다.

<엄용주 yongjuu@yahoo.com 영화평론가>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