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 디지털경제부장 yjlee@etnews.co.kr
지난 6일 국세청은 정부의 벤처지원자금을 전용한 18개 벤처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벤처기업에 대해선 창업후 3년간 세무조사를 면제하는 등 비교적 관용을 베풀어온 국세청의 이번 조사는 매우 이례적일뿐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뜻밖이다. 그러나 조사결과를 보면 더욱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벤처의 상징이 된 테헤란로에 들어앉아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기업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재테크용으로 지원자금을 전용한 기업주가 발각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헤쳐나가는 핵심수단으로 등장,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여겨지고 있는 벤처의 단면이 드러난 셈이다. 그동안 테헤란로의 낮과 밤, 특히 컴퓨터 앞에서 지새우는 밤과 만취해 휘청거리는 밤으로 이중화된 모습에 대해선 몇차례 지적돼 왔다. 그리고 벤처 정신으로 번 돈을 재테크용으로 쏟아붓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 국가의 경제구도가 벤처기업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지적들은 미꾸라지 몇 마리가 맑은 물 전체를 흐리는 것보다도 더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사실 우리나라 경제는 벤처에 의해 크게 달라지고 있으며, 벤처기업들이 기존의 대기업 구도를 급속히 바꿔놓고 있다. 그 첫번째가 소유와 경영의 문제다. 그동안 소유주(오너)의 말 한마디에 따라 움직여온 기존 기업과는 달리 벤처기업은 종업원을 주주로 만들어 호흡을 같이한다. 즉 똑같은 종업원이지만 내 일처럼 자발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것과 정해진 보수에 따라 일하는 것은 효율성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종전까지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부를 벤처기업에서 얻을 수 있다. 요즘 대기업, 관, 연구소, 학계 등에서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속속 옮기는 현상은 우리 경제·사회구조가 벤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평적 조직운영도 벤처기업이 앞장서서 퍼뜨리고 있는 신풍속도다. 그동안 수직구도에 익숙해온 기존 대기업들로선 벤처기업의 이러한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으나 이제는 스스로가 바뀌고 있다. 벤처기업 사장님이 그저 「리더」로 불리는 것도 수평적 기업이 갖는 특징인 것 같다. 또 벤처기업의 수평적 조직운영은 신속한 의사결정 외에도 투명경영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실질적인 벤처기업 전문경영인 1호로 꼽히고 있는 전하진 한글과컴퓨터 사장의 경우 『사장의 접대비도 공개한다』는 투명의식을 조직에 접목시키고 있다.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부에 대한 개념도 기존의 사업가들과 벤처기업가는 다르다. 1세대 벤처기업가로 불리는 이민화 메디슨 회장은 『소유의 부와 관리의 부를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기업활동을 통해 얻어진 부는 기업가가 위탁받아 관리하는 것에 불과하지, 결코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의 가치가 높아져 자신이 소유한 주식을 통해 얻은 돈(소유의 부)도 기업활동을 보장해준 사회에 일정 부분 기여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한 벤처기업가는 『자신의 부를 절대로 상속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는 벤처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실업을 줄이고 국가경제를 살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벤처로부터 찾고 있으며, 모범벤처가 세계 무대에서 우뚝서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경제 시대에는 벤처 정신으로 무장한 벤처기업의 뿌리가 얼마나 튼튼한가에 따라 그 국가의 생과 사를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국세청 조사결과에서처럼 탈선벤처, 버블벤처들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벤처의 탈선은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와는 비교가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을 비롯한 몇몇 벤처기업이 너무 미래가치에 치중된 평가를 받음으로써 부의 축적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터에 탈선벤처까지 가세한다면 앞날을 예측키 어려운 파장이 불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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