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 특허 분쟁 빈발

최근 세계 반도체업계간 특허 분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인텔-비아, 램버스-히타치·세가, 현대전자-인피니온 등 올 들어 제기된 굵직굵직한 특허 소송만 4건이나 된다. 반도체업체간 특허 분쟁은 해마다 2∼3건씩 발생한다. 석달도 안돼 벌써 1년치를 훌쩍 넘긴 셈이다.

반도체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시장 경쟁의 산물로 보인다』면서 『국내 업체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줄 잇는 특허 분쟁=지난 1월말 올해 특허 분쟁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특허 소송이 나왔다. 미 램버스사는 「싱크로너스 메모리 특허를 침해했다」며 일본 히타치제작소를 미 델라웨어주 윌밍톤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이 회사가 법원에 생산 및 판매 금지를 요청한 히타치 제품은 메모리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 망라됐다.

특히 램버스는 지난 3월 23일(현지시각)히타치로부터 칩을 받아 쓰는 게임기업체인 세가엔터프라이즈까지 끌어들여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미국 인텔도 지난 1월말 대만의 비아테크놀로지를 특허권 침해 혐의로 ITC에 제소했다.

인텔은 「P6 전공정(Front­Side)버스」 기술 특허를 비아가 부당하게 쓰고 있다면서 ITC에 판매 금지를 요청했다. 이 회사는 영국과 싱가포르에서도 소송을 제기했다.

인텔은 지난해 11월에도 PC133 칩세트를 놓고 비아와 기술 분쟁을 벌였으며 비아와 그 수요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계류중이다.

미국의 LSI 패키지기술 회사인 테세라는 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와 일본 샤프사를 ITC와 연방지방 재판소에 제소했다. TI의 DSP, 휴대기기 등에 쓴 패키지기술과 샤프의 휴대폰용 플래시메모리 기술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전자는 이달 초 미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지방법원에 독일의 인피니온사를 상대로 특허침해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전자측은 『회로설계 분야 2건, 제조공정분야 3건 등 D램 분야에서 보유한 5건의 특허를 인피니온이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특허 분쟁의 양상=올 들어 나온 반도체 특허 분쟁은 예년의 양상과 다르다. 우선 수요자까지 끌어들이는 점이 두드러진다. 램버스가 히타치의 고객사인 세가를 제소한 것과 인텔이 비아의 수요자들을 소송에 포함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다른 양상은 무차별적인 소송이다. 인텔은 같은 소송을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진행중이다.

램버스의 경우 히타치의 주요 반도체 제품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으며, 플라즈마피직스라는 미국 반도체 디자인 회사는 지난해말 삼성전자·현대전자·히타치·NEC·마쓰시타·소니 등 무려 10여 개사를 싸잡아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피소업체의 마케팅과 영업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줘 협상의 칼자루를 쥐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피소업체가 소송에 공격적으로 맞대응하는 것도 새로운 양상이다.

비아는 인텔의 소송에 뒤이어 영국 법원에 인텔을 특허침해 혐의로 맞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전자도 인피니온의 끊임없는 로열티 요구에 대응해 역으로 특허소송을 제기, 양사의 특허 수준을 법정에서 겨뤄보자고 나섰다.

그것도 인피니온의 독일 및 미국 주식시장 상장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소송을 제기해 인피니온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왜 소송이 잦아지나=아무래도 치열해진 시장 경쟁에 따른 결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시장에서 자사 제품의 점유율을 높이거나 확고한 자리를 굳히기 위해 반도체업체들이 특허를 전략적인 무기로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램버스가 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6개 대형 반도체업체들로 구성된 차세대 반도체컨소시엄이 본격 출범한 직후다. 램버스는 현행 램버스 D램과 DDR의 다음 단계 제품을 개발하는 이 컨소시엄에서 빠져 있어 불만스러웠으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램버스는 다른 반도체업체에 비해 그동안 램버스 D램의 상용화에 미온적이었던 히타치를 속죄양으로 삼았다. 인텔도 경쟁사인 AMD를 물밑에서 돕는 비아를 「눈엣가시」로 여겨왔는데 특허를 앞세워 본격적인 견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전망과 대책=국내 반도체업계는 앞으로 국제적인 특허 분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도체업계가 상위 업체 위주로 재편되면서 탈락의 위기에 놓인 업체들이 많아졌으며 생존 차원에서 특허 분쟁을 제기하는 업체가 많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또 상위업체들로서도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또 후발주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특허를 무기로 「본때」를 보여주려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반도체업체간 특허 싸움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조용광 현대전자 특허팀 부장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반도체업체에 특허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공격 목적이든 방어 목적이든 독자적인 특허 확보가 특허분쟁에서 자유로워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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