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논설실장 hdlee@etnews.co.kr
선거철이다. 여야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각종 정책을 공약(公約)으로 내놓았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함이다. 건전한 정책대결로 표의 심판을 받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각 정당이 발표한 공약은 그 정당이 유권자들의 판단을 구하기 위해 제시하는 나름대로의 집권 청사진이다.
여야는 정보통신 분야에 관한 나름대로의 공약도 발표했다. 공약의 공통점은 여야 할 것 없이 21세기 지식정보화 강국 건설이 목표다. 이를 위해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인터넷을 생활화하며 정보통신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여당은 2005년까지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올해중 144개 주요 지역의 초고속기간망을 완성하며 24시간 전자민원서비스 실시, 1000배 빠른 인터넷 개발, 인터넷 이용자 확대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야당도 초고속통신망 구축과 안방민원처리제도 도입, 1000배 빠른 인터넷 개발, 1인 1PC 구현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야는 이밖에 전자통신 분야 수출 확대, 사이버대학법 제정, 전자자금이체법 제정, 인터넷학교제도 도입 등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사회기반이 지식정보화로 전환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여야가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객관적인 공약을 발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 21세기는 무한한 사이버 공간을 누가 선점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생존과 번영이 결정된다.
그러나 여야가 내건 공약 중에는 유권자의 표만 의식해 지나치게 장밋빛이거나 선심성, 혹은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아이디어 차원이란 느낌이 드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는 건전한 정책대결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이다.
우선 여야의 공약은 그냥 말로만 실천에 옮길 수가 없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2월 말 현재 1200만명을 넘어선 인터넷 인구를 겨냥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에도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1000배 빠른 인터넷 개발도 마찬가지다. 1인 1PC 구현이나 전자정부 구현도 돈없이는 달성이 어렵다. 더욱 새로운 공약이라면 재원 마련 대책을 밝혀야 하고 이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여야 모두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사업추진에 필요한 재원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정당들이 발표한 공약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이 되고 말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는 정책의 타당성과 추진비용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나 검토없이 유권자들의 표만 노려 발표한 한탕주의식 공약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인터넷 면회소 설치나 인터넷 이산가족 상봉사업 등도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데 문제가 있다.
또한 구체적인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세부계획에 대한 발표가 없다. 그저 두리뭉실하게 이런 일을 하겠다는 게 대부분이다. 이는 나중에 공약 따로 실천 따로가 될 수 있다. 급하면 언제 시한을 정했느냐고 되받을지 모른다. 따라서 헛된 약속으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욱 정부가 이미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여야가 슬그머니 새롭게 포장해 제시한 공약도 없지 않다. 정부는 올해 세계 10대 지식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인터넷 이용기반 확충과 정보통신산업의 수출전략화, 정보화를 통한 국가사회의 혁신 지원 등 6개 핵심과제를 선정해 추진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여야가 발표한 공약중 상당부분이 정부가 추진중인 사업 내용과 겹친다.
구 소련의 수상인 후르시초프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묻자 『개울도 없는데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공약하는 사람들』이라고 해 폭소를 자아냈다고 한다.
여야가 표심만 노려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한다면 이는 정치 불신을 가져오는 일이다. 여야는 실현 가능한 공약을 발표해 유권자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또 여야의 공약을 객관적으로 비교분석해 표로 평가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판에서 공약(空約)은 사라지고 지식정보화 강국도 앞당겨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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