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출연연연구회 출범1년>3회-옥상위의 연구회

올해 초부터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연구개발정보센터(KORDIC)와 산업기술정보원(KINITI)의 통합을 두고 못먹는 물에 비유한 적이 있다. 못먹는 물과 먹는 물을 섞으면 둘다 못먹는 물이 되는데 굳이 둘을 합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논리였다.

정부를 대신해 조직 구조조정이라는 통합의 칼자루를 연구회가 떠맡아 KORDIC과 KINITI를 제물로 삼았다는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통합논의가 연구회 출범 이후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연구회의 입장은 따로 있다. 양 기관의 업무중복성은 연구회 산하 자체 기획평가위원회에서도 검증된 사안으로 연구회의 고유업무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실제로 두 기관간 업무중복 부분은 10%도 안될 뿐인데 운영시스템 자체가 확연히 다른 조직을 통합한다면 통합을 통해 얻는 업무효율의 제고보다 오히려 낙후된 조직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물론 연구회 출범 이후 기계연의 선박해양공학센터를 해양연으로 이관한 것이나 전자통신연의 슈퍼컴퓨터센터를 연구개발정보센터로 이전한 것 등 긍정적인 측면에서 소관 출연연의 기능을 조정하고 정비하는 것도 있었다.

출연연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당시 기획예산위원회는 연구회를 발족시킨 이유로 『무엇보다도 출연연에 대한 주무부처의 간섭을 줄여 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출연연의 기능중복 등을 조정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었다.

물론 연구회에는 사무국 이외에 소관 연구기관간의 기능조정, 평가, 소관연구분야의 장기발전방향 등을 자문하는 기획평가위원회와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자문을 구하기 위한 경영협의회가 구성돼 있다.

그러나 연구회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히 위상정립이 안된 상태에서 일을 저질러 통합 자체가 성과주의에 매달린 결과물로 전락하기 쉽다는 것이 중론이다.

위로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기획예산처가 버티고 있고 아래로는 출연연을 두고, 곁다리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과학기술부를 두고 있기에 조직 자체가 옥상옥이라는 비난을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지적의 밑바닥에는 의식하든 못하든 출연연의 연구비 확보와 예산 자율집행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연구회의 주목적이 조직의 경영효율화이든 아니든 예산편성에 있어 각 출연연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출연연구기관이 직접 상대하던 정부조직을 연합연구회에 위임함으로써 연구원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당초의 설립취지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연구원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고 있을 뿐이다. 연구원들이 보따리 프로젝트 수주에 나설 때 무엇을 했나.』(에너지연 L박사)

물론 긍정적인 시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연구회 관계자들은 『출범한 지 1년도 안되었는데 자리가 잡히기도 전에 뒤흔들어 버리면 어느 조직이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연구회의 설립목적에 따른 구체적인 운영방안이 나와 있어도 새롭게 시작하는 조직인 만큼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과거 정부출연연이 과기부의 산하기관으로 있을 당시, 이를테면 식목일에 나무 심으라는 등 연간 수백건의 공문이 내려왔다. 그러나 연구회가 들어서고부터는 출연연이 자체적으로 행사를 실시하거나 기구개편도 필요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해나갈 수 있게 됐다.』(화학연 C연구원)

연구회체제로 전환되면서 바뀐 것이라고는 고작 시시껄렁한 잡무가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물론 극단적인 표현이겠지만 연구원들 입장에서 보면 연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안정적인 연구비를 확보해주고 출연연이 보다 자율적으로 목표를 가지고 연구과제를 설정하는 등 아이덴티티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구회는 출범 당시 출연연 경영진의 능력이나 리더십 부족, 우수연구인력 유치상 어려운 점을 해결하고 경쟁 지향적인 인사제도 및 보상체계를 도입해 각 기관의 경영효율을 제고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연구회가 공모하는 출연연 기관장은 정부부처의 낙점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항우연 Y박사)

출연연이 비전을 가지고 설립목적에 맞는 연구과제조차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책임경영이란 말은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예산집행권 자체를 정부가 쥐고 있어 자율이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불가능한 논제라는 논리다.

물론 연구회가 그동안 부처간 밥그릇 싸움에 흔들려 온 출연연들의 입장에서 보면 혁신적인 운영체제인 것은 틀림이 없다.

연구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연구회체제 출범으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과거 출연연이 정부부처에 속해 있을 때 나타났던 경직성과 수동적인 입장에서 탈피해 급변하는 과학기술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구회는 어디까지나 출연연의 입장에서 최대한 자율을 보장하는 대신 연구성과와 경영성과를 엄격하게 평가해 출연연이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출연연의 자율과 책임경영 부족, 연구회와 출연연간, 연구회와 정부간의 관계설정 등의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또 자원배분시스템과 연구회 자체 운영문제 등도 재검토해야 할 문제다.

여기에 정부에 대해 소관 연구기관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소관 연구기관의 예산배분권 확보도 연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채영복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연구회는 한마디로 소관 연구기관들이 자율과 경쟁, 성과제고와 시대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출연연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키워드인 연구비 배분방식을 놓고 지난 1년간 정부측을 설득해 왔으나 유감스럽게도 실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구회가 일반의 시각처럼 옥상위 집이 아니라 출연연과 같은 입장에서 할 만큼 했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출범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연구회가 옥상옥이라는 비판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과학기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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