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투데이>(시리즈 4)·쇼클리의 귀향

실리콘밸리가 오늘날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인력이다. 이 곳에는 사람이 곧 재산, 엔지니어가 곧 새 기술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지 오래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전세계의 엔지니어들 중 가장 대우를 잘 받는 편이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에 대한 대우가 이처럼 좋아진 데에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이 이야기는 고향을 찾아 동부에서 귀향한 한 괴팍한 엔지니어로부터 시작된다.

스탠퍼드의 프레더릭 터먼 학장이 제자들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실리콘밸리의 기반을 마련했다면, 베이 지역이 동부 보스턴의 기술을 따라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윌리엄 쇼클리다. 그는 세계 정상의 반도체 학자다.

매사추세츠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쇼클리는 1947년 뉴저지주의 벨연구소에서 근무할 당시 두 동료인 존 발딘과 월터 브래틴과 함께 물리 양자론에 기초, 하이테크의 뼈대가 되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 오늘날 실리콘 반도체 칩의 기초가 된 이 트랜지스터의 발명으로 그는 동료들과 함께 1956년 노벨상을 받았다.

쇼클리는 노벨상을 수상한 해에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 팰러앨토에 반도체 연구소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되돌아온다. 쇼클리는 매사추세츠주 굴지의 전자제조업체인 레이시언사를 끌어들일 생각이었으나, 레이시언사는 쇼클리의 발명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대신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는 바이오 메디컬 기기 제조업체인 벡먼인스트루먼츠사의 후원을 받아 팰러앨토연구소를 세우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는 샛별 같은 많은 젊은 엔지니어들을 채용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압적인 경영 스타일로 여러 명의 직원을 떠나보내야 했다. 의심이 많았던 그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직원들에게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할 정도였다. 그저 자신의 고집 하나로 연구소를 운영했다. 그리고 결국 1년만에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로버트 노이스를 포함해 엔지니어 8명이 반발해 사직한다. 당시 그는 화를 내며 이들 이직자들을 「8명의 배반자」라고 비난했다.

쇼클리는 여러 모로 보아 괴이할 정도로 괴팍함을 가지고 있던 천재였던 듯하다. 그는 1963년부터 1975년까지 스탠퍼드 대학 교단에 서면서 과학 발전을 위한 논리체계 발달에 심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 시절 자신의 천재성에도 푹 빠져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논리체계는 인간에 대한 생각으로 발전해 나갔고 후에 논란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아이큐(IQ)로 인한 미래 위기설을 내놓기에 이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에 아이큐 나쁜 이들이 좋은 이들보다 더 많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해괴한 논리다. 학계에서는 이 주장에 대해 쇼클리가 물리학에 많은 공로가 있었음은 인정하나 그의 개인적 유전적 학설은 아무런 과학적 신뢰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쇼클리 반도체연구소는 몇번이나 주인이 바뀐 뒤 결국 1968년에는 문을 닫게 된다. 비록 쇼클리가 자신의 발명품을 상업적 성공으로까지는 연결시키지 못했지만, 실리콘밸리에는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을 제공했다. 흔히 사람보다 기계와 더 친숙하고 일상생활에 어리숙한 이들을 영어로 일컫는 너드(Nerd) 시대를 개막했다는 것이다. 이는 불과 20여년 뒤 빌 게이츠와 같은 너드 갑부들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테리리기자 terry@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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