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대학 프레더릭 터먼 교수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바로 기업가 양성에 뜻을 두었고 제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당시 캘리포니아, 특히 팰러앨토는 미국 전자산업과는 너무 먼 위치에 있었다. 전자산업이 미래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데에 대해 이의를 다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이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나 새로운 창업은 기술진과 연구 인력의 부족으로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터먼 교수는 이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두 제자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에게 이들이 개발한 오디오 오실레이터를 앞세워 회사를 세우도록 격려했다. 그리고 그는 이 두 제자에게 자신도 일부 투자하기도 했다.
팰러앨토의 한 차고에서 시작된 이 두 제자의 신생 회사는 1939년 1월 1일 「휴렛패커드사」라는 이름으로 합쳐져 오늘 날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가장 큰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이 회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에 새로운 기업 문화를 뿌리내리게 된다.
이른바 「HP 방식(HP Way)」이다. 부의 창출과 창의력이 중심이 되고 교육을 경영 목표의 최우선 순위로 두는 새로운 기업 문화다. 이는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이익 분담이나 개방적인 경영스타일, 철저한 팀 운영제 등 당시로는 획기적인 경영 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휴렛패커드사에서 이 같은 교육을 받은 수천명의 엔지니어들과 경영진들이 잇따라 독립, 자신의 회사를 세웠다. 이들은 HP 방식을 그대로 확산시켰다. 이 같은 흐름은 곧바로 실리콘밸리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할 무렵 지금의 실리콘밸리에는 이미 주요 전자산업의 기초가 구축돼 있었다. 하지만 전자산업의 중심축은 아직 동부에 있었다. 그래도 그 규모나 연구 정밀성을 감안하면 팰러앨토 지역은 뉴저지주나 매사추세츠주보다는 더 뛰어난 상태였다.
예를 들어 페더럴텔레그래프사는 팰러앨토가 핵심시장과 공급원, 그리고 숙련 인력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를 들어 주요 사업부문을 1931년 뉴저지주로 재배치했다. 이는 오늘날 많은 기술 중심의 회사들이 이 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과 정반대 현상이다.
베이 지역의 전자회사들은 세계 2차대전중 연방 정부와의 계약으로 비약적인 성장과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정부의 전자공학연구 지원자금은 다른 지역으로 흘러 들어갔다. 특히 동부의 MIT 대학과 이 대학 출신들이 세운 새 회사들은 연구분야의 자금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터먼 교수도 정부의 이 같은 지원계획에 한 몫 거들기 위해 하버드 대학 무선연구소장으로 미 동부지역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그가 1946년 다시 스탠퍼드 공학부 학장으로 되돌아왔을 때도 그는 동부보다 한 단계 뒤진 산업지역으로 되돌아간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터먼 교수가 당시 남긴 기록은 이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스탠퍼드는 세계 2차대전을 통해 별 특권을 인정받지 못한 기관이 돼 있었다. 스탠퍼드는 전쟁과 연관되는 엔지니어링 및 과학적 활동의 그 어느 핵심 부문에도 깊이 참여하지 못했다.』당시 터먼 교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테리리기자 terry@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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