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광 벤처법률지원센터 소장
실리콘밸리나 나스닥을 얘기하면서 『이스라엘이란 자그마한 나라는 무려 128개 기업을 상장시켰는데 우리나라는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벤처기업이 잘못해서, 혹은 우리나라가 덜 우수해서가 아니라고 본다. 한마디로 실리콘밸리에 우리의 네트워크가 없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멘로파크」는 유태계 벤처캐피털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처비즈니스는 어떤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가가 곧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결국 돈에도 족보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진 네트워크가 어떤 것인가, 그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기업이 나스닥에 한개도 없는 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초기 벤처기업은 무엇보다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선택과 집중이 가장 중요하다. 핵심 역량 외에는 모든 부문을 아웃소싱으로 커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각각 전문기관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가능한 한 마켓에서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모든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야 한다.
「네트워크」란 이제까지 우리 사회가 지연이나 학연에 의해 만들어온 인맥이 아니라 마켓에서 합리적 행위를 통하여 획득된 인적·물적 인프라를 말한다. 벤처비즈니스의 성공 여부는 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이 네트워크는 사회적인 한계내에 존재한다. 벤처기업이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핵심 역량 외에 기업의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요구들이 곧 외부적으로 정의되는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벤처네트워크의 핵심에는 벤처캐피털이 있다. 벤처캐피털은 단순히 기업에 자금만 공급하고 수익을 올리면 빠져나오는 자금이 결코 아니다. 고전적 금융권에서 제공하는 단순 뱅킹서비스가 주임무가 아니라는 말이다. 뉴욕의 증권회사를 움직이는 펀드매니저와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의 막강 후원자인 벤처캐피털리스트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벤처캐피털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네트워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투자한 기업을 성공시켜야 한다. 법률적인 서비스, 엔지니어, 경영, 회계, 세무 등 기업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벤처기업 경영자와 함께 고민하고 적시에 공급해 주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벤처는 선택과 집중이다. 벤처캐피털은 제2의 경영자가 돼야 한다. 벤처기업은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에서 벤처캐피털, 좁게는 창투사들은 과연 이런 역할에 충실한가. 이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정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우리는 네트워크를 단순히 돈을 가진 사람에게 국한된 것으로 생각한다. 가장 효율적이고 힘있는 네트워크는 돈을 벌 수 있는 사람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간의 네트워크다.
우리나라는 능력과 돈은 비례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된다. 돈을 모으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무형적인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풍토가 있다. 벤처는 사람 중심의 비즈니스다.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에게 돈이 모여야 하는 비즈니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적으로 창투사를 자본금 100억원 이상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제한적인 비즈니스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벤처의 전성시대에 벤처의 빈곤함이 상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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