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의약품 유통 독점 폐단

박종성 한내정보통신 사장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15일 전국을 단일권으로 하는 의약품 전자상거래망 구축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단일 의약품 전자상거래망을 구축하겠다는 목적이 의약품 비리근절인 것은 충분히 동감하지만 규제로 풀겠다는 방법이 가히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앞으로 10년간 모든 의약품 유통은 정부 또는 특정 기업의 전산시스템을 통해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기업은 신뢰성이 없다는 취지에서 모두 국유화해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제약회사·도매상은 강제적으로 이 시스템을 사용해야 하며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정한 수수료를 무조건 지불해야 하는 왜곡된 유통구조다. 모든 요양기관도 의무적으로 이 시스템을 사용해야 하며 경쟁력 있는 타 기업의 시스템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간 요양기관은 이미 의료보험EDI 사용료를 과다지불하는 피해를 당해 왔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지정한 독점업체에 사용자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점이다. 이는 능력있는 모든 회사가 유통사업에 참여하고 시장에서 경쟁적으로 정보화를 추구, 발전을 도모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능력의 유무는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밝혀질 일이지 정부가 정할 일이 아니다. 개별 기업을 믿지 못하겠다는 정부의 단순한 발상은 시장경제를 버리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제화 시대에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울 생각은 없고 오히려 위축시키고 있다.

 요양기관이나 공급업체는 보다 싸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통업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의무적으로 정부가 지정해주는 업체를 사용해야 한다면 독점업체는 그만큼 허술하고 방만하게 경영하며 경쟁력을 키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에 따른 모든 과중비용을 제약회사에 전가할 수 있다.

 진행과정에도 무리한 점이 많다. 정부는 본 사업의 법적 근거를 향후 국민건강보험법의 시행세칙에 넣어 마련하겠다고 한다. 의약품 전자상거래는 법의 시행세칙에 넣어 실시할 것이 아니라 공청회와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특히 법치주의 국가에서 아직 법규는커녕 시행세칙도 제정되지 않았는데 사업부터 진행하는 모순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선진국조차도 이제 시작하는 21세기 거래방식이다. 이를 위해 국내 중소 벤처기업들이 열심히 노력해 왔다. 의약품에 관해서도 오랜 기간 요양기관의 관리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해 왔다. 정부가 정부의 SW를 따로 만들어 강제로 보급한다면 벤처기업들은 설 땅을 잃고 만다. 향후 10년간 우리나라 의약품 전자상거래는 정부의 독점으로 자유로운 경쟁을 잃고 정체될 것이 분명하다.

 내용상의 부실한 면도 많이 있다. 유통정보의 보안성은 필요하다면서 보안성이 허술한 웹방식의 EDI를 채택한다는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조건 모든 거래를 의무적으로 정부시스템을 사용하라고 해서 업체들이 다 입력한다는 보장은 없다. 제2, 제3의 감시를 해야 한다. 이제 시장경제의 자율적인 조정장치가 없어지면서 일부 업체들은 요양기관과 비밀리에 결탁, 지금보다 훨씬 많은 부조리를 양산하게 되고 정부는 엄청난 감시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아직 성공사례가 빈약한 전자상거래에서, 그것도 가장 낙후된 의약품 유통분야에서 정부가 일거에 이를 정착시킨다는 것은 과욕일 뿐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정부가 나서 시스템사업을 직접 시행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기업들이 자유롭게 전자상거래를 하도록 하고 기업들로부터 거래에 따른 유통정보를 요구, 확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의 거래방법으로는 유통정보가 모아지지 않지만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 정보를 확보하기는 훨씬 용이할 수 있다. 개별 기업, 특히 중소 벤처기업을 육성하여 전자상거래가 잘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본연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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