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회장 칼리 피오리나

 칼리 피오리나(45). 그가 가는 곳에서는 항상 카메라플래시가 터진다.

 지난 7월 휴렛패커드(HP)의 루 플랫 회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이후 그는 말 그대로 뉴스메이커가 되고 있다.

 물론 그의 이같은 명성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AT&T에서 분사된 루슨트테크놀로지스의 글로벌 프로바이더 사업본부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는 200억달러의 매출을 자랑하는 대규모 조직을 훌륭히 이끌어왔다. 그리고 98년 미국 「포천」지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기업인 1위로 선정해 그 명성을 입증했으며 올해도 여전히 1위의 자리는 그의 몫이었다.

 이런 그였지만 다우존스 지수를 선정하는 데 포함되는 미 최우량 30대 기업의 하나면서 세계 제2의 컴퓨터업체인 HP의 최고경영자로 임명됐을 때 미국 재계와 언론의 놀라움은 의외로 컸다. HP가 최고경영자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도 처음이지만 첫번째 사례의 대상이 바로 40대 여성이라는 점이 아직까지 보수적 관행에 물들어 있는 미국 재계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그도 외부의 시각이 전문경영인이 아닌 여성 경영인으로서 자신을 주목하는 것에 대해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여성으로서 많은 편견을 경험해왔다. 사회의 이같은 편견이 나의 신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또 나 스스로도 타인에 대한 편견이 그 사람의 신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경썼으며 항상 그 사람의 내면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애써왔다.』 물론 그의 이같은 자신감에는 다른 사람이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을 만큼의 성공스토리가 뒷받침돼 있다.

 신임 회장을 선임하기 위한 인선위원회와 최고 결정권을 가진 이사회를 이끌었던 전임 루 플랫 HP 회장은 피오리나를 차기 회장으로 결정한 데 대해 『우선 20년 동안 여러 분야, 특히 정보사회의 핵심인 통신사업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과 연간 200억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조직을 훌륭히 이끌어온 능력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피오리나 사장이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대내외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은 다른 후보자와 차별화된 독특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루 플랫은 『이사회가 피오리나의 이같은 능력이 HP 임직원들이 단합해 회사의 가치를 보전하고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확신했다』고 전하고 『그와 같이 일했던 지난 석달 동안은 이사회의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입증해주는 기간이었다』며 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피오리나와 HP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5년 전 스탠퍼드대학에 다니면서 HP에 잠시 아르바이트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는 당시를 『가정과 같이 따뜻하고 특별한 분위기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물론 자신이 25년 후 HP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HP와의 인연은 그후에도 이어졌다. 5년 전 AT&T서비스 부문의 분사를 추진하면서 HP를 벤치마킹했다는 것이다. 벤치마킹 대상으로 HP를 선택한 것은 HP가 창조정신이 살아있는 젊은 회사였기 때문이라고.

 새 천년을 이끌 회장에 취임하고 나서도 그의 HP에 대한 평가는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는 HP에는 신뢰와 존중, 성실, 고객과 지역사회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라는 영혼이 있으며 이같은 HP의 핵심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임회장을 맞은 HP가 그에게 거는 기대만큼이나 HP로서는 커다란 변화의 시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본격 업무에 돌입하기도 전 영업부문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벌써부터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 그 예다. 『HP에는 앞으로 가져가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다. 버려야 할 것이라면 과감히 변화를 모색해야 하며 이것은 적절한 균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커리어우먼 신화를 창조해가는 그지만 가정과 기업을 모두 꾸려가야 한다는, 일하는 여성들의 고통에서는 별반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그는 『두 가지 일 모두를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선택이며 지금까지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화답한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기에 칼리 피오리나를 선택한 HP와 HP를 선택한 그의 결정은 과연 HP와 칼리 피오리나가 지금까지 써온 성공스토리의 클라이맥스가 될 것인지 궁금하다.

약력

54년 9월 6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출생, 스탠퍼드대 졸업(중세역사.철학 전공), 메릴랜드대(경영학 석사) MIT 슬로안스쿨(과학석사). 80~95년 AT&T에서 애틀랜틱.캐나디언 지역 총괄사장, 북미 지역 총괄사장, 글로벌서비스 프로바이더 사업부 사장, 95~99년 AT&T 분할기업인 루슨트테크놀리지스에서 글로벌서비스 프로바이더사업부 사장, 98.99 미 최대 경제지인 "포천"에서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우먼으로 선정, 미국.중국 통상위원(US CHINA BOARD of Trade)위원, 99년 7월 HP 회장으로 임명(99년 1월 1일 임기 개기)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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