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격동기의 가전산업

박문학 신일산업 전무

 요즘 들어 국내 가전업계 전반에 걸쳐 큰 기상변화가 일고 있다. 그 하나는 이르면 다음달부터 가전제품에 대한 특별소비세가 폐지된다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오픈 프라이스제의 시행이다.

 이 가운데 가전제품에 대한 특소세 폐지는 가전업체들의 오랜 숙원사항이라는 점에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사치성 높은 제품에 대해 특소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던 지난 77년 당시로는 TV나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사치성 제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부터는 가전제품 보급률이 100%를 상회, 생필품으로 자리잡으면서 희소가치마저 없어진 것이다. 이를 감안, 가전업계는 그동안 가전제품에 대한 특소세의 폐지를 꾸준히 주장해 왔는데 이제야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로써 향후 가전시장 전반에 상당한 수요진작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옥에 티라면 정부측에서 당초 이를 적용하는 시기보다 무려 4개월이나 빨리 발표함으로써 IMF를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전업체들에는 잔뜩 기대했던 특소세 폐지라는 호재가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최근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측에서도 이같은 실정을 고려해 최근 특소세 폐지시기를 1개월 가량 앞당기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이도 실제 시장에서는 그나마 있던 수요마저 대기수요로 몰고가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결국 가전업체 입장에서는 소비자에게 미리 특소세를 내는 것에 상응하는 메리트를 제공하거나 아예 손해를 보더라도 가격을 미리 인하하는 등의 대응책을 모색해야만 하는 실정인 것이다.

 또다른 변화의 물결은 지난달부터 실시하고 있는 오픈 프라이스제로, 이는 단기간의 시장침체가 우려되는 특소세 폐지와는 달리 근본적인 측면에서 가전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는 사안이다. 오픈 프라이스제 시행은 그동안 제조업체들이 책정해온 가격을 최종판매자가 결정토록 함으로써 그간의 유통구조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이 판촉방법의 일환으로 가격할인 행사를 습관처럼 실시하면서 가격질서를 어지럽힌 것이 사실이라 이같은 유통구조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할인점은 소비자가격에서 몇%를 낮춰 판매하는 「할인율」 경쟁으로 고객을 유치했고 백화점의 경우 1년에 서너번씩 「세일」이라는 상술로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또한 일반 재래시장에서는 유통업자들이 여러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박리다매 형태의 판매방식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유통단계별로 따라붙는 마진을 보장해주기 위해 제조원가에 비해 훨씬 높은 권장소비자가격을 붙여온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높은 소비자 권장가격을 표시하던 제품을 몇% 인하해줄테니 우리 물건을 사라는 호객행위가 지속되더니 이제는 얼마만큼 낮춘 가격을 표시해야 하는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혼수기의 구매욕구를 끌어들이기 위한 결정적인 방안을 마련치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제조업체들로는 상당히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그동안 제조업체들은 좋은 제품을 개발, 생산하기만 하면 유통점에서 잘 팔아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지만 허구적인 높은 권장소비자가격을 책정해 놓고 대폭적인 할인행사를 통해 소비자들을 현혹시켜온 유통업체들도 이제는 달라져야만 한다. 앞으로 제조업체들의 경우 뼈를 깎는 원가절감만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디자인 개발과 차별화된 제품개발을 통해 대고객 서비스의 질을 더욱 높여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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