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I월드콤, 스프린트 1290억달러에 인수.」
지난 5일 사상 최대규모의 기업 인수합병(M&A)이 이뤄졌다. 인수 공식발표가 있기 하루 전 MCI월드콤과 벨사우스는 스프린트 매입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MCI는 당초 670억달러를 제시했으나 벨사우스가 720억∼1000억달러의 인수안을 내놓자 인수금액을 이같이 높인 것이다. 이는 세계 통신서비스 시장의 무한경쟁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세계시장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통신사업자들간 인수 합병은 물론 협력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이뤄진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보아도 미국 AT&T와 영국 브리티시텔레컴(BT)이 합작사를 설립한 것을 비롯, 신생통신사업자인 글로벌크로싱이 프런티어의 장거리전화사업을 인수했고 벨애틀랜틱과 보다폰이 합작해 세계 최대규모의 이동전화회사를 설립하는 등 세계 통신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의 M&A 파동은 지난 96년 통신법 개정에 따른 사업영역 철폐가 계기가 됐다. 지역전화회사끼리의 합병, 지역전화회사와 케이블TV 회사의 합병, 해외유력 통신사업자와의 합병은 물론 인터넷사업까지 통합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합병 등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
여기서 미국 통신회사 가운데 세계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AT&T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지난 84년 장거리회사와 7개의 지역전화회사로 분할됐다. 미국 전화사업을 독점하고 있던 AT&T가 당시 분할을 결정한 배경은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이라는 정보통신 기술조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던 AT&T가 최근 들어 재통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일본의 NTT는 미국의 AT&T가 13년 전 실시한 분할작업을 최근 실시했다. 97년 6월 국회에서 NTT법이 개정되면서 NTT는 하나의 지주회사 아래 장거리통신회사와 시내통신을 담당하는 2개 지역회사 등 4개 회사로 나누어졌다. AT&T와 같이 언제 재통합 논의가 일어날지는 불분명하지만 NTT의 분할은 통신사업 규제완화를 불러왔고 이는 일본 통신서비스에 국내와 국제 사이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등 일본 통신산업계 전체의 재편성을 촉발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재편성 바람이 일본에서도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이다.
국가에 의해 규제돼 자율적인 경쟁에서 외면당했던 전기통신서비스가 어째서 최근 들어 이처럼 가혹한 시장경쟁에 노출되고, 또 이를 위해 합종연횡하면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내몰렸는가. 이는 통신의 주력이 전화 등 고정통신에서 이동전화와 데이터통신으로 옮아가면서 신기술을 앞세운 신흥세력이 급부상함에 따라 독점적 지위에 있던 기존 통신사업자들이 경쟁력을 강화해 위상을 제고하려는 데서 출발했다. 정보의 디지털화, 통신망의 광대역화, 인터넷의 급성장 등의 기술발전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우리나라에서도 98년부터 정부와 통신업계가 그동안 논의 자체를 꺼려오던 기간통신사업자의 구조조정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통신업계에서는 각종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나오는 등 기간통신사업의 구조조정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게다가 정보통신부는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제한 규정을 현행 33%에서 49%로 확대하는 시기를 2000년으로 결정한 바 있다. 또 지난 2일 MCI월드컴이 국내에 전액출자해 자회사 설립을 선언했으며 에어터치가 신세기통신의 최대주주로 등극할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선진 외국의 통신사업자들로부터 무풍지대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인 통신사업자들은 이미 합병 인수를 통해 몸집을 키워 글로벌네트워킹을 전개하고 있다. 인수규모만 보아도 최저 수백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우리의 통신사업자를 대표하는 한국통신의 경우 주식시가총액은 약 200억달러, SK텔레콤은 약 60억달러 수준이다. 한마디로 게임이 안된다.
우리는 지금 IMF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국가경제의 핵심이자 지식 기반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정보통신서비스의 글로벌화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 세계는 지금 정보통신서비스의 빅뱅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지금 준비해도 이른 것은 아니다.
정보남 논설위원 bn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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