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의 열악한 TV드라마 제작 환경과 드라마 과다 편성 등이 자주 언론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주시청 시간대에 지상파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일일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 등을 편성해 시청률 높이기 경쟁에 나서고 있고, 이 과정에서 캐스팅 경쟁 과열, 스타시스템에 대한 지나친 의존, 내용의 불건전성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PD연합회는 지난 16일 방송회관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드라마 제작PD와 방송학자 등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드라마 한국」이라는 주제로 창립 12주년 기념 토론회를 개최,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우선 이날 토론회에서 연세대 최양수 교수는 드라마가 과대 편성되고 있다는 시각에 반론을 제기했다. 미국 방송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드라마 편수가 다소 적기는 하지만 드라마가 여전히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낮시간대에 방영되는 소프 오페라, TV용 영화 등을 포함하면 결코 우리나라보다 드라마 편성 건수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선호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데, 이는 사회적인 긴장수준이 훨씬 높기 때문이며 드라마가 이를 이완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의 방송에 대한 정치적인 통제로 인해 보도나 다큐멘터리가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구력이 떨어진다는 점, 취업하지 않은 여성이 재택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등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최 교수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산업은 전형적인 과점 구조』라고 지적하고 있다. 소수의 역량있는 연출가·작가·탤런트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선 인기인을 캐스팅하기 위한 방송사간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기 마련이며 연기자에게 지불되는 제작비 비중이 높아져 다른 제작요소에 충분히 투자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이같은 제작 환경을 개선해야만 드라마의 품질이 개선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KBS 드라마제작국의 윤흥식 주간은 고품질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한 몇가지 처방전을 제시했다.
우선 드라마 기획 등이 치밀한 계획하에 진행되는 「사전 전작제」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출연자의 노동량·촬영일수·난이도 등을 감안해 출연자를 섭외하고 신인 탤런트의 계획적인 양성, 탤런트 정보의 전산화를 통해 캐스팅의 시야를 넓히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방송작가에 대한 보호장치 마련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를 위해 기존 작가들을 중심으로 집필시스템의 선진화를 추구하고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작가들을 중심으로 공동 집필을 본격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신인 작가를 양성하기 위해 공모하는 극본의 상금을 파격적으로 인상해 실험정신과 작가 정신으로 무장된 신예 방송작가들을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드라마 제작시 일반화 돼 있는 1인 연출 체제 대신 공동 연출 및 협업체제를 강화해 제작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방송사의 드라마 정책도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디지털 방송 시대에 대비해 세트·분장·의상·조명·촬영·녹음·편집 등 스태프분야의 지원시스템을 마련하고 PD시스템의 도입, PD의 재교육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윤 주간은 주장했다.
이처럼 국내 지상파 방송의 TV드라마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새로운 프로듀서 시스템의 도입 논의가 방송사 내부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KBS의 경우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등 선진 방송국에서 보편화 돼 있는 프로듀서 제도의 도입을 검토중인데, 이번 가을 프로그램 개편부터 프로듀서 시스템을 도입,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KBS가 확정한 「프로듀서 제도」 방안에 따르면 디렉터는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고 CP와 프로듀서간에 역할 분담 및 적절한 권한 및 책임 이양을 통해 제작시스템을 선진화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CP(프로그램 총괄 관리), 프로듀서(CP를 보좌해 제작권을 디렉터와 협의해 수행), 디렉터(드라마의 작품 완성도 제고)들이 각각 업무를 분장토록 한다는 게 프로듀서 제도의 주요 골자다.
KBS는 이같은 프로듀서 제도를 프로그램 규모가 크거나 제작 난이도가 높은 프로그램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프로듀서 제도가 도입되는 프로그램에 대한 진행비는 프로듀서의 관할하에 집행되며 일체의 행정행위에 대한 1차적인 책임 역시 프로듀서가 지게 된다.
MBC 역시 프로듀서와 디렉터의 분리를 주내용으로 새로운 프로듀서 제도의 정착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방송사들의 노력이 결국은 우리나라 TV드라마의 제작환경과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게 방송계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
많이 본 뉴스
-
1
5년 전 업비트서 580억 암호화폐 탈취…경찰 “북한 해킹조직 소행”
-
2
LG이노텍, 고대호 전무 등 임원 6명 인사…“사업 경쟁력 강화”
-
3
AI돌봄로봇 '효돌', 벤처창업혁신조달상품 선정...조달청 벤처나라 입점
-
4
롯데렌탈 “지분 매각 제안받았으나, 결정된 바 없다”
-
5
'아이폰 중 가장 얇은' 아이폰17 에어, 구매 시 고려해야 할 3가지 사항은?
-
6
美-中, “핵무기 사용 결정, AI 아닌 인간이 내려야”
-
7
스마트폰 폼팩터 다시 진화…삼성, 내년 두 번 접는 폴더블폰 출시
-
8
삼성메디슨, 2년 연속 최대 매출 가시화…AI기업 도약 속도
-
9
美 한인갱단, '소녀상 모욕' 소말리 응징 예고...“미국 올 생각 접어”
-
10
국내 SW산업 44조원으로 성장했지만…해외진출 기업은 3%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