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로맨스 팬터지. 그러나 영화가 표방하는 로맨스는 팬터지의 무게에 짓눌려버린 꼴이 됐다.
「재미있는 시나리오」라는 긴 소문 끝에 탄생한 「자귀모」는 그동안 영화에서 다뤄졌던 이승세계로 찾아든 귀신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저승세계를 영화의 본 무대로 삼는다.
전작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재주를 선보였던 이광훈 감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영상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는 실패했다.
코미디와 멜로, 호러의 장르가 뒤섞인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강화된 컴퓨터그래픽이 기존의 「귀신들의 사랑이야기」와 가장 차별화되는 점이지만, 관습화된 지루한 이야기 속에서 특수효과가 영화의 뚜렷한 대안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을 꿈꾸던 채별(김희선)은 자신을 버리고 부잣집 딸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한수로 인해, 엉겁결에 달리는 전차에 몸을 던진다. 자살 권유 실적을 올리기 위한 영업 귀신들에 의해 그녀의 영혼이 도착한 곳은 「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인 「자귀모」.
아직 죽을 운명이 되지 않은 사람들조차 마구잡이로 저승세계로 끌어들이는 이들의 불법 영업은 저승사자들에게 표적이 되어 쫓김을 당한다.
그러나 자신이 원한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채별은 자귀모에 가입한다.
그녀는 뚱뚱한 몸매를 비관해 자살한 「다이어티」(이영자)와 강간에 대한 충격으로 목숨을 끊은 「백지장」(유혜영), 사랑하는 연인 대신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칸토라테스」(이성재) 등과 함께 영업2팀에 속하게 된다.
자신을 강간한 남자들을 죽이기 위해 이승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백지장은 채별에게도 나한수에 대해 복수할 것을 강요하지만 저승사자와 데이트중인 다이어티와 사람을 찾아 병원을 돌아다니는 칸토라테스는 채별의 복수를 만류한다.
복수와 용서 속에서 갈등하던 채별은 나한수의 비열한 행동에 복수를 결심하고, 저승사자들에게도 지명수배자가 되어 쫓김을 당한다. 그러나 칸토라테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채별은 그로부터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이유를 듣고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자귀모」의 최대 매력이 3D까지 동원한 컴퓨터 그래픽이라면 최대 약점은 재미를 위해 집어넣은 산만한 구성으로 줄기를 잃어버린 내러티브다.
덕분에 다양한 사랑은 있지만 사랑을 느끼게 하는 힘이 약하다. 처음 영화에 출연한 이영자를 비롯해 개성 있는 다양한 조연들의 화려한 캐스팅은 영화 보기에 위안을 주는 부분.
다양한 캐릭터 상품으로도 만들어질 이 영화의 주조연들은 이제 한국영화도 점차 부가산업에 눈을 돌리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엄용주·자유기고가>
많이 본 뉴스
-
1
테슬라, 중국산 '뉴 모델 Y' 2분기 韓 출시…1200만원 가격 인상
-
2
필옵틱스, 유리기판 '싱귤레이션' 장비 1호기 출하
-
3
'과기정통AI부' 설립, 부총리급 부처 격상 추진된다
-
4
'전고체 시동' 엠플러스, LG엔솔에 패키징 장비 공급
-
5
모바일 주민등록증 전국 발급 개시…디지털 신분증 시대 도약
-
6
은행 성과급 잔치 이유있네...작년 은행 순이익 22.4조 '역대 최대'
-
7
두산에너빌리티, 사우디서 또 잭팟... 3월에만 3조원 수주
-
8
구형 갤럭시도 삼성 '개인비서' 쓴다…내달부터 원UI 7 정식 배포
-
9
공공·민간 가리지 않고 사이버공격 기승…'디도스'·'크리덴셜 스터핑' 주의
-
10
MBK, '골칫거리' 홈플러스 4조 리스부채…법정관리로 탕감 노렸나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