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미국에서는 통신시장의 구도를 일거에 바꾸어 놓는 기업간 대규모 합병소식이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설립된 지 2년밖에 안된 신생 통신사업자 글로벌크로싱이 지역전화사업자 US웨스트를 370억달러에 인수한다는 발표를 내놓은 것.
양사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한 공식발표 석상에서 양사는 US웨스트측이 글로벌크로싱의 지분 9.5%를 약 24억달러에 인수한 후 50대 50 비율의 주식합병 작업을 거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사의 합병으로 태어나는 회사는 글로벌크로싱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글로벌크로싱과 US웨스트의 기존 주주들이 50%씩 지분을 나눠 갖기로 했다. 합병회사의 경영은 US웨스트의 솔 트루질리오 최고경영자(CEO)와 글로벌크로싱의 로버트 애넌지애터(Robert Annunziata) CEO가 공동으로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발표는 연매출 4억2400만달러의 신생업체가 매출 120억달러 규모의 업체를 인수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매출보다는 성장가능성이 중요시되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소규모 업체가 대형업체를 삼키는 희귀한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기존 지역전화사업자와 공격적인 신생 장거리통신 사업자간의 합병으로는 최초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지난 97년 3월 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통신망 임대사업을 제공한다는 취지하에 설립된 글로벌크로싱은 지난해 기업공개후 주가가 15달러에서 60달러로 폭등해 시가총액이 260억달러를 웃돌게 되자 이를 토대로 기존 통신업체 인수를 통한 통신시장 직접 진출을 모색해 왔다.
글로벌크로싱은 먼저 지난 3월 미국 5위 장거리전화사업자 프런티어를 112억달러에 주식교환 방식으로 인수해 장거리통신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US웨스트까지 인수함으로써 19개국, 185개 도시에 이르는 통신망을 확보, 지역전화·국내전화·국제통신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AT&T, MCI월드컴 등 대형 통신업체들과 직접 경쟁하는 글로벌 통신사업자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이들 3개 업체의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약 750억달러에 이르며 지난해 매출액은 150억달러를 웃돌았다. 이만하면 일단 작년 매출액 177억달러의 MCI월드컴과 532억달러의 AT&T와 경쟁할 만한 위용을 갖춘 것이다.
합병회사는 US웨스트의 지역전화시장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크로싱이 보유한 인터넷 프로토콜(IP) 기반 통신망과 프런티어의 장거리 통신망을 기반으로 전세계 시장을 겨냥한 음성·데이터·비디오 통합서비스 제공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글로벌크로싱은 또한 당분간 기업고객에 초점을 맞추기로 해 AT&T, MCI월드컴 등과 기업고객 대상 고속 데이터전송 서비스, 웹사이트 호스팅, 원격회의 및 음성전화 등에서 경쟁할 전망이다.
분석가들은 글로벌크로싱이 지명도에서는 MCI나 AT&T에 비해 훨씬 떨어지지만 보유하고 있는 통신망의 품질이나 범위에서 이들을 앞서고 있어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디지털가입자회선(DSL), 비디오전송, 무선데이터통신 등의 차세대 통신분야에서 US웨스트가 우수한 노하우를 갖고 있어 향후 글로벌크로싱의 사업전개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밖에 1년 매출이 120억달러에 이르는 US웨스트가 가져다줄 풍부한 현금유동성은 향후 글로벌크로싱의 사업전개에 날개를 달아줄 전망이다. US웨스트와 글로벌크로싱은 이번 합병이 60억달러 규모의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크로싱이 장거리전화사업과 지역전화사업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지난 96년 발효된 통신법에 의해 지역전화사업자가 자사 서비스지역에서 장거리전화사업을 하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전화사업자가 장거리통신시장에 진출하고자 할 경우 먼저 자사의 지역전화 서비스지역을 완전히 개방했음을 FCC에 승인받아야 한다. 지난 97년 지역전화사업자 SBC와 AT&T가 합병을 추진했으나 이러한 규정 때문에 FCC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해 버려 협상이 무산되기도 했다.
업계 분석가들은 US웨스트와 글로벌크로싱·프런티어의 합병은 SBC·AT&T에 비해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적어 FCC가 합병 자체를 저지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합병이 승인을 얻어도 US웨스트의 사업지역에서 장거리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FCC의 승인요건을 갖추는 것이 간단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크로싱측은 합병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춰 장거리통신시장 진출을 승인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US웨스트와 글로벌크로싱의 합병에 대한 FCC의 승인절차가 그리 까다롭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오랫동안 장거리통신서비스시장을 노려온 지역전화사업자들이 기대에 들떠있다. 벨사우스, SBC, 벨애틀랜틱 등 주요 지역전화사업자들은 US웨스트·글로벌크로싱의 합병을 기점으로 장거리시장 진출전략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이미 그 사전작업으로 지난달 벨사우스는 미 제4위 장거리전화사업자인 퀘스트커뮤니케이션스의 지분 10%를 35억달러에 인수했으며 SBC도 장거리통신사업자 윌리엄스 커뮤니케이션스에 지분을 투자하는 한편 동종업체 아메리테크와의 합병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벨애틀랜틱은 경쟁업체 나이넥스와 합병을 마무리하고 지역전화·장거리전화사업자인 GTE와의 합병을 진행중이다. 업계 분석가들은 US웨스트·글로벌크로싱의 합병을 기점으로 해 벨애틀랜틱과 SBC가 올 하반기중 뉴욕과 텍사스지역에서 장거리전화사업에 진출하는 등 기존 지역전화사업자들의 장거리통신시장 진출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안경애기자 ka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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