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내년에 개시될 예정인 방송위성(BS) 디지털방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는 전자프로그램가이드(EPG) 서비스를 둘러싸고 주도권 다툼이 뜨겁다.
EPG는 빈 주파수대나 여유 채널을 사용하는 데이터방송을 통해 디지털TV의 화면상에 표시하는 방송프로그램 일정표를 의미한다.
시청자는 리모컨으로 이 EPG를 조작해 당일은 물론이고 약 1주일 후에 어느 방송국에서 어떤 방송프로그램을 방영하는지 등을 간단히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프로그램 이름을 지정하면 일람표보다도 더욱 상세한 프로그램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서비스에 따라서는 EPG의 화면으로부터 프로그램 이름을 지정해 예약녹화도 할 수 있다.
이 BS디지털방송을 사용하는 EPG서비스 사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미국 벤처기업인 젬스타인터내셔널과 덴쓰, 그리고 신문·잡지 등에 프로그램 정보를 제공하는 도쿄뉴스통신사 등으로 구성된 그룹이다.
이들은 미국에서는 약 700개 방송국이 채용해 이미 사실상의 업계표준으로 자리잡은 젬스타의 EPG기술을 사용해 서비스에 나서기로 하고, 사업추진 합작사로 「인터액티브 프로그램 가이드」를 4월 설립했다.
덴쓰 그룹에 맞서는 곳은 미쓰비시상사와 위성방송 관련 정보지 출판업체인 새틀라이트매거진 등을 중심으로 하는 그룹이다.
미쓰비시상사 그룹이 추진하는 EPG서비스의 운영 주체는 지난 97년 새틀라이트매거진을 주축으로 설립돼 현재 통신위성(CS) 디지털방송의 프로그램 정보를 정리해 각 매체에 제공하고 있는 「프로그램정보 데이터베이스 센터」가 맡을 예정이다. 이 회사는 자본금이 1억엔으로 다소 작지만, 미쓰비시상사를 비롯해 대형 가전업체의 출자를 받아 조만간 5억엔 정도로 확대할 예정이며, 특히 가전업체로부터는 기술적 지원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덴쓰와 미쓰비시상사 두 그룹이 EPG서비스에 참여하는 것은 인터넷에서의 「포털(현관) 사이트」와 마찬가지로 EPG화면도 BS디지털방송에서는 가장 먼저 시청자가 대면하고 각 채널을 불러내는 입구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EPG서비스 경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업체는 광고주나 방송국으로부터의 막대한 광고 수입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EPG화면과 BS데이터방송, 인터넷 등을 결합한 상거래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덴쓰 그룹은 먼저 지상파 계열 민간방송국과 협력해 이들의 지상파 데이터방송을 통해 올 가을부터 지상파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는 EPG서비스 「G가이드 골드」를 개시할 계획이다. 지상파에서 실적을 쌓고, 내년 시작하는 BS디지털방송의 EPG서비스에도 대응해 나가겠다는 의도다.
이와 관련, 이미 히타치제작소와 일본빅터 등은 G가이드 골드에 대응하는 TV를 판매하기로 했다.
미쓰비시상사 그룹은 독자의 데이터방송 채널을 가지고 전국 규모로 EPG서비스를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BS 데이터방송의 사업 면허를 신청했다. 인가 결정은 가을쯤으로 예정돼 있어 표면적으로는 아직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수면 밑으로는 제휴상대 물색에 나서는 등 준비작업을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두 그룹의 EPG서비스 사업은 현재 커다란 장벽에 부딪혀 있다. 사업 추진에서 가장 중요한 BS디지털방송국과의 교섭이 예상외로 난항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덴쓰 그룹의 경우는 제휴 상대가 되는 민방측에서 『CS디지털방송에 진출해 있는 덴쓰가 BS디지털방송에서도 기선을 잡으려 한다』며 견제의 목소리가 높다. 또 젬스터에 고액의 로열티를 지불하게 되는 가전업체로부터 충분한 협력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두 그룹 모두에 찬물을 끼얹는 움직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BS디지털방송을 추진하는 일본방송협회(NHK)와 민방이 제휴해 EPG서비스를 공동운영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덴쓰와 미쓰비시상사 두 그룹은 EPG서비스에 참여할 여지가 매우 좁아진다. 그리고 공동운영하는 EPG서비스의 하청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느냐, 각 방송국의 협력을 얻어 독자의 서비스를 추구하느냐, 아니면 그 중간 상태로 나가느냐의 선택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덴쓰와 미쓰비시상사간 주도권의 향배는 어느 진영이 앞서 사업계획을 재정립하고 BS방송국을 등에 업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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