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세상엔 세대차가 없다.. 실버 네티즌들 PC통신 "삼매경"

 올해로 63세인 백병기옹은 요즘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즐겁다. 바로 PC통신 때문이다. 백병기옹이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컴퓨터를 켜는 일. 각종 게시판에 들어가 관심 있는 글들을 캡처해 놓고 시간여유가 나는 대로 갈무리한 글을 읽어본다. 참고할 만한 글들은 프린트해서 따로 정리해둔다. 백옹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에 꼭 두 번씩은 PC통신에 접속해 게시판을 둘러본다.

 백옹은 『게시판을 이용하면 각자 살아온 길이나 생활해온 분야가 달라 관심을 가져보지 못했던 내용들을 짧은 시간 내에 얻을 수 있다』며 『PC통신을 하고 난 후부터는 지루함은커녕 시간이 모자라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읽는 것으로만 만족해오던 백옹은 요즘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이나 틈틈이 기록해 놓았던 글들은 올리기도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좀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내가 올린 글의 조회수가 많이 나오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는 백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남은 책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모두들 가정의 어른을 위해 가슴에 꽂아드릴 카네이션 꽃과 선물을 마련한다. 하지만 젊은이들과 꾸밈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 많은 어르신들이 외로움이나 대화의 단절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백병기옹처럼 인터넷이나 PC통신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찾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는 세대차도 나이도 없기 때문이다.

 40여년 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PC통신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박우인옹(68)은 나이를 잊은 실버네티즌. 그는 게시판에 수시로 글을 올리고 젊은이들과의 채팅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 홈페이지(http://www.hitel.net/∼pwooin/)를 만들어 취미인 PC통신을 비롯해 테니스, 바둑, 마작, 등산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놓기도 했다.

 박윤상옹은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통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모임인 박약회의 대표시솝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수시로 PC통신에 글을 올리고 회원들의 근황을 소개하는 박옹은 또 직접 제작한 홈페이지(http://www.hitel.net/∼py17/)에 투병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심경을 표현한 한시를 사진과 함께 실어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지난해 「제3회 고령자 인터넷탐험한마당」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성한옹(67)은 지난 96년 인터넷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김옹의 관심사인 통일문제와 관련된 글을 올리기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동생이나 중국에 있는 딸과도 인터넷 전자우편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또 매일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정보의 바다를 탐색하는가 하면 친구나 친지들에게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권유, 정보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천리안에서 백운산이란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좌형옹(66)은 노모를 모시며 경기도 남양주에서 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부.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chollian.net/∼bus777)에 자신의 글과 좋아하는 그림 등을 올려놓았다. 지난 94년 컴퓨터를 영농에 활용할 농가 모집에 응모한 것이 계기가 되어 컴퓨터를 시작한 조옹. 이제는 컴퓨터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컴퓨터와 함께 하루를 마감할 만큼 컴퓨터 마니아가 되었다. 그는 방제와 비료, 제초제 사용에서부터 젖소 키우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PC통신에서 얻고 사육관리에도 컴퓨터를 활용한다.

 『컴퓨터가 논을 갈고 풀을 베는 것은 아니지만 농사에 관한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으니 농부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농기계』라고 강조하는 조옹은 『앞으로 컴퓨터를 이용해 최고의 무공해 농산물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다짐한다.

 사진작가로 유니텔의 영상창작동호회의 대표시솝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경환옹(61)은 10대의 아마추어 사진가 지망생에서부터 40∼50대의 중량급 사진작가까지 아우르는 「큰형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실버네티즌이 늘어남에 따라 PC통신에는 중장년층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동호회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동호회는 하이텔의 원로방. 지난 92년 문을 연 「원로방(go silver)」은 60세 이상의 노인 1만7000여명이 가입해 서로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에서는 노인들에게 도움이 될 여러 가지 생활정보를 제공하며 여성모임인 「오죽헌(여성모임)」, 체신부 출신들의 모임인 「체우회」, 유교연구 모임인 「박약회」, 전직 교사 모임인 「삼락회」 등 다양한 소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곰방대와 크레용」은 하이텔의 어린이 무료 회원(중학교 2학년까지)과 만나는 자리로 따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린이들간의 대화가 수시로 오가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멜로 소사이어티」 회원들과도 한·일 영상회의 개최 등 다양한 교류활동을 벌이고 있다.

 천리안의 원로통신동호회(go senior)는 40세 이상의 네티즌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 40∼50세의 「젊은이」는 물론 60∼70대의 어르신들도 여러 명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77세 회원의 암 투병을 격려하기 위해 게시판도 만들었으며 소녀가장 돕기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니텔에 50대 이상의 네티즌들이 이용하는 「삶의 향기」가 운영되고 있으며 나우누리에는 40세 이상 중년층들의 친목모임인 「황금시대」와 45세 이상의 친목모임인 「학마을」이 개설돼 있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던 인터넷이나 PC통신에 노인층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 미국의 인터넷 관련 비영리단체인 「시니어넷」은 현재 미국의 인터넷 이용자 5000만명 가운데 약 700만명이 50대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미국내 55세 이상의 성인 가운데 3분의 1이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고 이들 가운데 43%가 최근 1년반 동안 컴퓨터를 마련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국내 PC통신에도 60세 이상의 노인 회원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사회가 진전될수록 정보소외 계층인 노인들을 위한 정보화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정보화는 노인들의 사회 소속감을 높여주고 개인이 스스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세대간의 갈등을 줄이는 데도 큰 몫을 담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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