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리지 공항에서 비행기가 급유를 받는 동안 우리는 잠깐 내려서 쇼핑을 했습니다. 더러는 휴게실에서 쉬면서 커피를 마시거나 신문을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공항 창밖의 광장 끝은 산비탈이었는데, 그곳에는 노랗게 잎이 지고 있는 떡갈나무들이 있었고, 바람이 불자 잎이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떨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 떼를 지어 치솟더니 공중을 뱅그르르 돌다가 흩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조차 무척 세찼습니다. 그 바람조차 한국에서 우리가 맞이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무척 거친 바람으로 느껴졌습니다.
나는 면세점에서 담배와 필름을 조금 사고, 휴게실의 가판점에서 미국 신문들과 주간지를 살펴봤습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펜트하우스와 플레이보이 잡지를 집어들고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송혜련씨는 본 일이 없겠지만, 그런 잡지 내용은 들어서 알 것입니다. 처음 그런 것을 들고 보았다고 나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겠지요.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 눈에 띄니까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안을 펼치니 너무 심해서 나는 얼굴이 붉어졌고, 주위를 돌아봤습니다. 더구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서너살 된 서양 아이가 바로 옆에서 내가 펴든 책을 쳐다봐서 얼른 덮었습니다. 잠깐 본 펜트하우스에 벌거벗은 여자들의 사진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젖무덤이 큰지 나는 그런 것을 처음 봤습니다. 태평양을 건너와서 처음 본 것이 여자 젖무덤 사진이라고 하니 실망하실지 모르겠군요. 그것은 아주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이곳은 자유스럽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며칠 전 시카고의 어느 거리 쇼핑센터에서 슈퍼마켓에 들어가 한쪽에 진열된 권총을 비롯한 총기를 보고 놀란 것과 비슷합니다. 온갖 권총을 비롯한 각종 총기들이 있었는데, 어느 것이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가지고 싶었던 것은 펜트하우스 다음으로 예쁘게 생긴 그 권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송혜련씨,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농담이고 실제 나는 그런 것을 탐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무한한 자유가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자유스럽다는 것만으로 충만한 나라는 아닙니다. 그 자유가 지탱되는 것은 그 자유 속에 버티고 있는 엄격한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처럼 부자유한 곳도 드물 것입니다. 자유와 부자유가 최대치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혼자 무슨 짓을 해도 상관 없지만, 남에게 조금의 불쾌감을 줘도 범죄에 해당합니다. 이 미묘한 자유와 부자유가 잘 조화가 된 나라가 미국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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