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정보기술(IT)산업 전시회인 미국 CES 2026에 참석 중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6은 말 그대로 'K테크'의 전시장이 됐다. 14만명 이상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CES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전체 혁신상 수상 기업의 절반 이상을 휩쓸었고 참가 업체 숫자도 미국에 이은 2위라고 알려져 있다. 라스베이거스 거리에는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리며, 이미 세계 문화 중심에 선 한국이 이제는 IT에서도 중심에 있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인공지능(AI), 디지털 헬스, 소프트웨어정의자동차(SDV), 도심항공모빌리티(UAM)까지 주요 전시장 곳곳에서 한국 기업의 이름과 로고를 찾는 일은 더 이상 놀라운 장면이 아니다. AI 반도체, 온디바이스 AI PC, 4D 이미징 레이더, 메가와트급 전기차 초고속 충전, 헬스케어 웨어러블과 정신건강 플랫폼 등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할 때마다 그 뒤에는 빠짐없이 한국 기업이 서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러한 한국 기업의 부상을 '어부지리'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대중국 제재로 인해 중국 기업의 입지가 좁아진 자리를, 상대적으로 규제 부담이 덜한 아시아 기업들, 특히 한국업체들이 메우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빅테크와의 파트너십, 글로벌 밸류체인에서의 공급 안정성도 이른바 지정학적 프리미엄의 연장으로 읽힌다. 정치·안보 환경이 변하면 이런 프리미엄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불안한 시선이 그야말로 기우가 될 수 있도록 한국 기업과 연구자들이 더 실력을 키워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CES에서의 화려한 존재감이 곧장 실질적인 경제적 부가가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들은 혁신상 수상과 글로벌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즐기지만, 정작 CES 이후 매출과 이익, 산업 구조 고도화로 연결된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다. AI, 모빌리티, 디지털 헬스 등 고성장 시장 전망치는 화려하지만, 플랫폼과 운용체계, 핵심 알고리즘을 장악한 주체는 대부분 미국, 중국, 유럽 기업이다. 한국은 여전히 하드웨어·부품과 특정 응용 분야에서 '잘 만드는 파트너'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무엇보다 아쉬운 지점은 선도 기술보다는 추종 기술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는 구조적 현실이다. 생성형 AI, 에이전틱 AI, 피지컬 AI 등 CES 2026을 관통하는 개념을 주도적으로 정의하고 서사를 만들어 내는 주체는 해외 거대 기업과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다. 한국 기업의 기술 수준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새로운 시장·표준·규칙을 스스로 설계하기보다는, 이미 제시된 레퍼런스를 빠르게 따라가며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강점을 보여 왔다. 부품·장비·완성품 경쟁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서려면, 이제는 남이 만든 룰 위에서의 효율 경쟁을 넘어, 우리가 먼저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의 언어를 제시하는 쪽으로 전략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 CES 전시장의 화려한 조명 뒤에서, 한국 기술이 진정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주체인지 스스로 묻고 답할 시간이다.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할 변화는 무엇일까. 여전히 보여주기식 문화가 강한 정부와 국회, 거기에 발맞춰야 하는 기업과 대학의 어려움을 발전적 에너지로 전환시켜야할 때가 왔다. 다행히 관과 민이 하나가 되어 AI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흐름을 잘 활용하여 경제사회 전 부문의 혁신을 이뤄내자. 이제 떠오르는 중심국가로서 자부심을 더 키우고 시장 장악력 등 아쉬움은 줄여 나갈 수 있는 신선한 변화의 단초가 바로 2026년 CES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