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탄소중립의 혈맥 'MVDC'가 여는 전력망의 미래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분산전원의 급속한 확산으로 전력 시스템은 근본적인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송전망을 통해 전국으로 공급하는 중앙집중식 구조가 가장 효율적이었다. 최근에는 태양광과 풍력처럼 지역 곳곳에 분산된 발전원이 늘어나면서 전력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배전(distribution) 중심 운영 체계로 전력망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설비 구성의 조정을 넘어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 전반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특고압 직류배전(MVDC, Medium Voltage Direct Current)' 기술은 미래 전력망을 떠받칠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다. MVDC는 기존 교류(AC) 중심 배전망의 한계를 보완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 수요 구조 변화에 더욱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이다.

특히 전력 수요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전력망에 연결되는 자원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배전망의 역할과 기능을 확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자체가 더 많은 전원을 수용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MVDC의 중요성은 한층 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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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DC, MVDC, LVDC 기술 개요.

MVDC는 교류 방식에 비해 전력 손실이 적고 동일한 선로에서 더 많은 전원과 부하를 수용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이는 재생에너지 설비와 전력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는 환경에서 배전망 활용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비교적 넓은 지역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고밀도·고효율 배전 네트워크 구축에 유리하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데이터센터, 태양광·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본질적으로 직류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직류 배전 방식에 직접 연계할 경우 전력변환 손실을 줄이고 망 전체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는 에너지 이용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적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MVDC 시스템은 전력변환 설비를 통해 전력 흐름을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존 배전 방식과 차별화된다. 이러한 제어 능력은 출력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특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전력의 흐름을 더욱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전력망 운영의 선택지가 그만큼 넓어진다는 의미다.

그 결과, MVDC는 전력망의 유연성·가제어성·복원력을 동시에 강화한다. 송·변전 설비 확충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입지 제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MVDC는 지역 단위에서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효율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인식 아래, 산업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제1차 장기 배전 계획을 통해 배전 인프라를 재생에너지 확대와 지역 분산형 에너지 체계 구축을 위한 핵심 기반으로 규정했다. 이는 전력망 전환의 중심축이 송전에서 배전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동시에 배전 네트워크가 단순한 '전력 전달망'을 넘어 에너지 전환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핵심 무대로 확고히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흐름은 향후 배전 기술 고도화의 핵심으로 MVDC가 주류를 형성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그동안 직류 관련 기술은 초고압 직류송전(HVDC)과 저압 직류(LVDC)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HVDC가 장거리·대용량 송전을 통해 전력계통 간 연계를 가능하게 했다면 LVDC는 수용가 단위에서 새로운 전력 활용 방식을 제시해왔다.

반면 MVDC는 전력회사가 운영하는 공용 배전망에서의 적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MVDC는 전력 흐름을 능동적으로 제어하고 교류와 직류가 공존하는 AC-DC 복합 운영을 구현하기 위한 배전용 직류 기술이다. 다시 말해 배전망 구조와 운영 방식을 확장하기 위한 독립적인 기술 영역에 해당한다.

직류 배전 체계는 전력변환 단계를 줄여 효율을 높일 뿐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충전 설비, 데이터센터 등 직류 기반 설비를 한층 직접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구조적 이점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전력 흐름 제어와 배전망의 독립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동일한 설비 조건에서도 전력 수용성과 운영 유연성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는 향후 배전망이 수행해야 할 역할의 범위를 실질적으로 넓혀주며 지역 단위 에너지 플랫폼 구축의 든든한 기반이 된다.

이미 중국, 유럽, 북미를 중심으로 MVDC를 활용한 다양한 실증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서로 다른 배전 계통을 직류로 연계하거나 재생에너지 수용을 확대하고 다중 터미널 구성을 적용하는 등 활용 범위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교류와 직류가 결합된 AC-DC 복합 배전망의 실제 적용과 운영 방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전력망의 미래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 MVDC 기술 개발은 단일 설비나 특정 구간 적용에 그치지 않는다. 다수의 수요와 분산 전원이 혼재된 공용 배전망 전체를 AC-DC 복합 구조로 전환·운영함으로써 신뢰성·유연성·효율·설비 이용률 등 배전 체계 전반의 성능을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배전 설비와 운영 체계를 포괄적으로 재정의하는 구조적 전환이며 장기적인 전력망 경쟁력을 좌우할 중요한 시도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차세대 AC-DC 하이브리드 배전 네트워크 기술개발 사업'이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은 기존 교류 배전 방식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고 MVDC 개념을 실제 공용 배전망에 단계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선행 기술 개발 사업이다. 2022년부터 2029년까지 약 2665억원 규모로 진행되며 핵심 기기 개발부터 운영 기술, 실규모 배전망 실증까지 전 주기를 포괄한다. 연구 성과가 현장에 적용되는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검증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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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기연구원 광주 스마트드리그본부 MVDC 테스트베드 현황.

한국전기연구원은 사업 기획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MVDC용 전력변환 설비의 제어·보호 솔루션과 보호·차단기기, 진단 기술 등 주요 핵심 요소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착수한 차세대 AC-DC 하이브리드 배전망 테스트베드 과제를 주관하며 개발한 기술을 실규모 배전망에 통합해 검증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실 수준의 기술을 실제 전력망으로 확장하는 가장 중요한 연결 단계다.

아울러 기술 개발과 함께 제도적 기반 마련과 국제 표준화도 병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기설비기술기준과 한국전기설비규정(KEC) 체계 내에서 직류 및 AC-DC 복합 배전 인프라 적용을 위한 기준 정비가 한창이다. 국제적으로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를 중심으로 MVDC 표준화 논의를 주도해 왔으며 2025년 9월 IEC 총회에서 MVDC 배전 관련 분과위원회 구성이 승인되는 결실을 거뒀다. 이는 기술 개발과 제도 정립이 유기적으로 함께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성 측면에서는 초기 설비비 비교를 넘어 운영 효율 개선과 전력망 유연성 향상이라는 운용 가치를 중심으로 단계적 확산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분산에너지특별법과 지능형 전력망 정책, 정부의 '차세대 전력망 구축'과 '에너지 고속도로' 구상 역시 이러한 기술적 전환과 구조적으로 맞닿아 있다.

MVDC는 기존 교류 배전망을 전면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변화하는 에너지 환경에 대응해 전력망의 수용성과 운영 유연성을 확장하는 가장 현실적인 전환 수단이다.

한국전기연구원은 과거 배전자동화(KODAS) 기술 개발 등 배전 분야 지능화와 운영 효율 향상에 기여해 온 저력이 있다. 이제는 MVDC 기술 개발을 통해 에너지전환 시대에 요구되는 전력망 혁신을 다시 한번 주도해 나갈 것이다.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한 전력망의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속도와 방향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조용한 혁명의 중심에는 MVDC라는 든든한 동력이 자리하고 있다.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KER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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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 원장

〈필자〉 전기차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이는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연구에 매진해온 김 원장은 2023년 1월 한국전기연구원장에 임명돼 '전기화 세상'을 실현하고자 노력 중이다. 1984년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90년 KERI에 입사했다. 전력반도체연구센터장, HVDC연구본부장, 연구부원장과 원장 직무대행을 차례로 역임하며 전기연구원의 연구 역량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대외적으로는 SiC 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전기전자재료학회 부회장, 한국세라믹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과학기술훈장 도약장(2018년), 한국전기전자재료학회 자랑스러운 전기전자재료인상(2022년)을 수상한 바 있다.


노동균 기자 defros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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