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방송 실험 송출시기 싸고 양대방송사 "신경전"

　오는 2001년부터 본방송에 들어가는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실험방송」 실시 시기를 놓고 KBS와 MBC간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당초 재원 부족으로 디지털방송의 조기 도입에 회의적인 의견을 보였던 KBS와 MBC가 막상 실험방송 실시 시기를 놓고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초 MBC가 한글자막방송을 먼저 시작하는 바람에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에 타격을 입었던 KBS는 지상파 디지털방송만은 MBC에 선수를 빼앗길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양사의 자존심 대결은 실험방송 일정이 점차 앞당겨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당초 KBS는 올 초 발표한 「시청자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올해 「방송의 날」인 9월 3일을 기해 디지털방송의 실험방송을 시작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KBS측은 LG정보통신·현대전자 등과 개발중인 디지털 방송용 송신기와 HDTV용 비디오 코덱을 사용하면 9월 3일부터 실험방송을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었다.

　이에 반해 그동안 따로 디지털 장비를 개발하지 않고 있던 MBC는 『디지털방송용 구매 규격 확정 및 외자 구매 등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실험방송의 실시 시기를 KBS보다 앞당기기는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통부는 그동안 방송사가 공동으로 실험방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 왔으며 이를 통해 오는 10월부터 실험방송을 본격 실시토록 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그러나 MBC가 ETRI와 공동으로 디지털 실험방송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KBS측의 행보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KBS측은 당초 9월 3일부터 실험방송을 하려던 일정을 앞당겨 6월 10일부터 실험방송에 들어가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다음달 10일부터 열리는 방송장비 전시회(KOBA) 기간 동안 기술인연합회·가전업체 등과 협조체제를 구축, 관악산 송신소를 활용해 실험방송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KBS측은 KOBA 기간이 끝나더라도 실험방송을 계속 실시할 예정이다.

　이처럼 KBS가 일정을 앞당기자 MBC측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MBC는 ETRI와 공동으로 이달 15일께 대전 부근 식장산에서 디지털방송을 실험 송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단 MBC측은 ETRI와 협력하는 부분에 대해선 매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MBC측의 한 관계자는 『ETRI와 공동으로 디지털방송을 추진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ETRI가 개발중인 디지털 송신장비를 테스트하기 위해 식장산의 MBC 송신시설과 인력을 지원해주는 정도에 불과하며 아직 일정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또 15일께부터 디지털방송을 실험 송출하기 위해서는 안테나 등 관련장비를 하루 빨리 구매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준비가 미흡한 상태며 ETRI가 개발중인 소출력 디지털 송신장비를 그대로 본방송에 활용하는 것도 별도의 검토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측은 KBS가 실험방송의 일정을 앞당긴 것에 대해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MBC와 KBS를 제외한 다른 방송사들의 입장은 다소 느긋한 편이다.

　SBS는 KBS와 MBC가 디지털방송을 추진하는 일정을 보아가며 천천히 추진한다는 입장이며 EBS는 KBS와 협력해 디지털방송의 실험 송출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