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과학기술" 평가작업

경종민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 소장

 조그만 움집을 짓는 데는 약간의 경험과 솜씨만 있어도 된다. 그러나 고층건물이나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면 실제 작업뿐 아니라 계획(혹은 설계)하고 평가(혹은 감리)하는 데 오랜 기간과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

 하물며 당장 먹고 살 물건이 아닌 미래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투자하는 과학기술 연구나 교육사업의 경우에는 계획하고 평가하는 기능이 실제 일의 수행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사업은 일반적인 생산·건설·서비스사업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둘째,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당장은 큰 표시가 안나지만 나중에는 도저히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과학기술 연구개발과 교육사업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가 질적인 고급화를 향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이 두 미래사업 분야에서는 양(量)이나 수(數)가 절대로 질(質)을 대체할 수 없다. 정부에서 사업의 성패를 매출액 규모나 창업회사·논문·특허 등의 숫자만으로 평가한다면 좋은 연구, 희망있는 교육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평가를 할 때는 평가작업의 취지와 효과 그리고 효율적인 방법과 요건에 대해 잘 숙지하고 이를 실제 평가작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평가의 양대 축은 뭐니뭐니해도 전문적 탁월성과 대범적 공평성이다.

 첫째, 해당분야에서 전문적 탁월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객관적으로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것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평가자라고 한다면 그 결과는 둘 중의 하나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별말 못하고 형식적인 논평으로 끝낼 것이고, 만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권위를 앞세워 어거지를 쓰게 되기 쉽다.

 둘째, 공평성은 대범의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다. 소시민적(대범하지 못한) 공평성의 예를 들어보자. 잘못한 것만 잡아내고 잘한 부분에 대한 칭찬과 인정에 인색한 평가는 영점짜리다. 구제불능의 파렴치한 고의적 오류가 아니라면 전체 사업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소신있는 평가의 자세일 것이다.

 또한 사업의 수행에서 일어난 잘못을 지적함에 있어서도 중요하지 않은 규정을 극단적으로(수행자에게 가장 불리하게)만 적용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잘못된 부분만 뒤져 찾아내려는 태도, 얼마든지 긍정적 해석이 가능한 선의적 사업수행 결과도 규정을 들어 큰 흠집을 내려는 태도, 사업수행자를 근거없이 호출하고 불시 실사 등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모습이다.

 따라서 기획 및 평가제도는 연구수행의 탁월성과 대범적 공평성의 관점에서 검증되고 인정된 사람들이 신분보장과 재정지원을 받고, 그 명단이 공개되어 100% 권한과 책임을 지고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짜여져야 한다.

 평가는 일에 대한 심판의 과정이다. 자격요건이 갖추어진 사람들, 긍정적인 마음으로 정의를 찾는 사람과 이들이 날개를 펴고 일할 수 있는 체제가 우리 사회에는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목마르게 기다리는 영역이 바로 과학기술 개발과 인력양성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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