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하지 않고 TV프로그램을 녹화 및 재생할 수 있는 VCR장치가 선보여 신기술 마니아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새로운 장치는 녹화매체로 비디오테이프 대신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사용하며 고성능 명령어축약형컴퓨터(RISC) 프로세서가 각종 동작을 제어하도록 디자인됐다. 비디오화면을 아날로그 형태로 저장하는 일반 VCR와 달리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MPEG2 압축파일 형태로 각종 프로그램이 저장된다.
이 장치는 기존 VCR의 기능이 대개 비디오대여점에서 빌린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거나 몇 개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데 그쳤던 것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지능적인 녹화기능을 제공해 TV프로그램을 유용한 취미생활 및 학습도구로 만들어준다고 공급업체들은 설명한다. 분석가들은 이러한 디지털VCR가 궁극적으로는 기존 VCR를 대체할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몇 년간은 신기술 마니아들에 의해 VCR와 공존하는 소수 그룹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HDD를 탑재한 디지털VCR를 내놓은 곳은 미 티보사와 리플레이네트웍스 2개사. 두 회사는 각각 「퍼스널TV」와 「리플레이TV」라는 세트톱박스 형태의 VCR를 이달부터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각종 TV프로그램 가이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가격은 저가형 모델이 500∼700달러이고 고급형은 1500달러에 달해 200달러 이하에 구매할 수 있는 일반 VCR에 비해 일단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비디오테이프 대신 HDD를 탑재함으로써 기존 VCR에서 생각하기 어려웠던 신기한 기능들이 가능하다는 게 사용해본 이들의 평가다. 일단 TV프로그램은 수신된 즉시 MPEG2 파일 형태로 압축 변환돼 HDD에 저장된다. 시청자가 실제로 보는 것은 안테나나 케이블을 통해 수신된 TV신호가 아니라 HDD에 저장된 동영상 파일이다. 그러나 파일변환과 재생이 워낙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반 TV 시청과 차이가 없으며 거의 실시간으로 녹화와 재생이 이루어진다.
실시간 녹화기능이 가져다주는 장점은 의외로 크다.
이들 제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기능은 「지능형 녹화기능」으로, 이를 통해 시청자는 자신만의 채널을 구성할 수 있다. VCR가 매일 지정된 시각에 전화선을 통해 TV프로그램 가이드 서비스에 접속한 후 프로그램 리스트를 자동으로 업데이트하는데 이를 보고 시청자가 어떤 프로그램을 녹화할지 선택하면 그 시간에 알아서 녹화가 진행된다. 쇼 채널의 경우 프로그램 가이드 화면에서 원하는 쇼를 선택한 후 녹화를 선택하면 1회 또는 그 쇼가 방영될 때마다 녹화를 해주기도 한다.
특히 리플레이TV에서만 제공하는 키워드를 이용한 녹화기능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시청자가 특정 배우나 감독, 주제 등의 키워드가 들어간 프로그램을 모두 녹화하도록 지정하면 VCR가 알아서 프로그램을 검색해 해당하는 것을 녹화해준다. 키워드에 따라 녹화된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원하는 편리한 시간에 볼 수 있고 그 다음 지워버릴 수도 있으며 보관해두거나 가지고 다녀야 할 경우는 일반 VCR로 전송해 녹화를 하면 된다.
그러나 리플레이TV나 퍼스널TV의 기능이 아무리 획기적이더라도 당장 VCR를 대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반 VCR는 200달러 이하에 살 수 있고 2달러 상당의 테이프에 6시간 분량의 프로그램을 녹화할 수 있는 데 비해 이들 장치는 용량당 비용이 훨씬 높은 HDD를 탑재해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압축기술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는 녹화용량의 제한으로 결론지어진다. 리플레이TV는 3단계 녹화품질 중 최저품질을 선택할 경우 1GB의 HDD에 한시간 분량의 프로그램을 녹화하는데 저가형 모델의 경우 최저품질로 녹화해도 고작 10시간 정도를 녹화할 수 있다. 이때 화질은 VHS테이프보다 떨어지고 특히 스포츠나 액션영화에서는 그 차이가 현저하게 두드러진다. 좀더 나은 화질을 원해 중간 압축률을 선택하는 경우 저장용량이 반으로 줄어든다. 고화질을 선택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현재 리플레이TV와 퍼스널TV는 리플레이네트웍스(http://www.replaytv.com)와 티보사(http://www.tivo.com)의 웹사이트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리플레이TV는 10시간까지 녹화가 가능한 699달러짜리 저가형 제품 리플레이TV 2001모델과 최대 14시간의 녹화용량을 지원하는 899달러짜리 2003모델, 28시간까지 녹화할 수 있는 1499달러짜리 2004모델 등이 판매되고 있다.
티보의 제품은 필립스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으며 14시간의 저장용량을 지원하는 제품이 499달러에 판매되고 있고 고급모델의 경우 30시간까지 녹화가 가능하다. 티보는 리플레이TV와 달리 인터넷을 통한 프로그램 가이드 등의 서비스에 대해 매달 10달러의 이용료를 내도록 하고 있다.
한편 이 두 제품 외에도 올해중 유사한 제품들이 선보일 전망이다. 마쓰시타전기는 HDD업체인 퀀텀과 손잡고 녹화·정지·반복재생·리와인드 등이 가능한 HDD 탑재 비디오 편집장치를 내놓을 계획이며 소니 등도 유사한 제품을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경애기자 ka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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