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석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얼마 전 주요 일간지에 모 증권사의 전면광고가 게재된 적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던 그 광고의 주제는 「한국을 사자」는 것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우선은 1조원 규모이지만 최종적으론 100조원에 달하는 펀드를 우리가 사둠으로써 앞으로 엄청난 규모로 커질 가능성이 있는 우리 기업들의 가치를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져가기 전에 우리가 챙겨 놓자는 내용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우리 경제를 희망적으로 제시했다는 의미에서 이 광고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광고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광고의 설득력이 떨어짐을 알고는 실망하기가 십상이다. 내용인즉 소위 국내 몇몇 기업의 가치를 동종 외국 기업의 가치와 비교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두 개의 주가지수 그래프를 통해 우리 증권시장도 미국의 그것처럼 앞으로 4배 정도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국민경제에 얼마나 좋은 일일까.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미국의 증권시장이 그토록 상승하게 된 여러 가지 조건들로는 어떠한 것이 있고 그러한 조건들을 충족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광고는 지난 문민정부 때 정부에서 KDI의 연구결과 형식을 통해 국민에게 제시했던 분홍빛 미래전망을 떠오르게 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다수로 하여금 잘못된 허상을 좇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우린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선진국이 된 것 같은 G7프로젝트가 과연 우리 과학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았는가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데는 우리들이 너무나 희망쪽에만 초점을 두고 모든 정책이나 국가적 사업들을 추진해서일 것이다. 어려운 조건 아래에서도 희망적인 전망을 무리하게 발표하는 이유는 아마 책임을 지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는 IMF 한파에도 불구하고 벤처열풍이 가장 강렬하게 불어닥친 한 해였다. 육성정책을 펼칠 수 있는 관련부처마다 벤처기업을 육성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앞다투어 제시한 바 있다. 언론에서도 성공한 벤처기업가를 발굴하여 소개함으로써 많은 젊은이들에게 벤처기업에 대한 꿈을 가지게 했다. 공과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상당수가 벤처기업을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벤처기업 열풍은 이미 대학가에는 익숙한 얘기가 된 지 오래다. 이에 벤처창업과 관련한 강의의 개설은 물론 벤처창업 지원을 위한 창업센터들도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언론에 회자되는 성공한 벤처기업의 경우, 그 구성원들이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가에 대한 공감대는 별로 형성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글자 그대로 벤처기업은 모험이다. 위험이 클수록 보상이 크다는 단순한 논리처럼 모험이란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쓴다는 의미다. 다만 여러 위험 속에서도 남들이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나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으며 낮은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일단 성공하면 그 대가가 매우 크기 때문에 소위 천사(angel)로 불리는 벤처 캐피털이 기꺼이 투자를 함으로써 벤처창업가와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한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벤처 캐피털산업이 미국처럼 잘 발달된 것이 아니어서 벤처 캐피털의 원천은 대부분 정부의 육성지원자금이다. 정부에서 나오는 자금은 대부분 초기 창업단계에 지원되는 것이지 몇 년씩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미국의 벤처 캐피털처럼 해당 기업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벤처 실패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면서 그 과실을 나누어 가지는 게 아닌 만큼 선정과정이나 지원규모 등에서 선진국의 그것보다 덜 까다로울 것이다. 소위 벤처기업 중에 정말로 기술이나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던져 승산이 있어 보이는 기업이 현재 몇 퍼센트나 될까.
벤처기업의 특성상 성공률이 다른 기업보다 월등히 높지는 않을 것이다. 젊음과 아이디어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또 다시 도전해볼 용기가 있고 재도전할 때에는 성공할 확률이 좀 높아질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정말 벤처기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과거에도 존재해 왔던 소규모 창업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따라서 「벤처기업=성공」이라는 허상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주지 않으면서 벤처를 장려하기 위해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더욱 튼튼한 기술력을 키우고 지식을 축적한 후 치열한 경쟁의 선봉에 서야 할 젊은이들을 너무 일찍 좌절을 경험하게 하고 더 크게 나아갈 가능성을 꺾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의 활성화를 통해 기술을 상용화하고 산업을 발전시키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예처럼 잘못된 허상을 좇는 벤처창업이 창궐하게 된다면 이는 커다란 문제다. 그 어떤 성공한 벤처기업가도 세계적인 실력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많은 이들에게 되물어보자. 과연 외부조건이 주어진다면 성공적인 벤처기업가가 되기 위한 첨단기술 분야의 기본기를 갖춘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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