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39)

 담장 밖으로 나오면 해방감을 느낀다. 사복으로 갈아 입었다고 그런 것이라기보다 담장 안과 밖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나는 송 소위가 준 메모지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은 필시 연애편지일 것이다. 송 소위는 아직 미혼이고, 어떤 여자와 열애에 빠져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상대가 부대에서 가까운 은행 창구 아가씨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어떤 여자일까. 소대장의 애인을 만나는 데 내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메모지를 펴보고 싶었지만 남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듯해서 참았다.

 거리에는 봄이 무르익으면서 가로수가 풋풋한 싹을 틔우고 있었다. 봄은 여자의 옷차림에 노출이 많아지면서 온다. 앞서 걸어가는 여자의 하얀 종아리가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까. 봄 탓인지 아니면 담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발생한 쓸데없는 해방감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앞을 지나쳐 보기는 했지만 안으로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나는 비록 컴퓨터 회사에 취업을 하고, 이제 컴퓨터 기술자가 됐지만 은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은행은 마치 한동안 사랑하다가 헤어진 애인 같은 감정이었다.

 은행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창구에는 여러 명의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집무를 보는 여자도 있고, 옆의 창구 직원과 잡담을 하기도 했다. 나는 여직원들을 돌아봤다. 누가 소대장의 애인일까. 그 창구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를 찾았다. 막연하지만 예쁜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두 예뻤다. 어느 한 여자를 찍어서 말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하고 예쁜 모습이었다. 밤색 칼라의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거의 같은 모습으로 보인 탓도 있을 것이다. 첫번째 창구에 앉은 여자는 몸이 조금 뚱뚱했지만 둥그스름한 얼굴이 귀엽고 눈망울이 인상적이었으며, 두번째 앉아 있는 여자는 외모보다 몸매가 날씬하고 매끈한 느낌을 주었다. 세번째 여자는 안경을 썼지만 지적인 외모에 섹시한 느낌을 주었고, 네번째 여자는 가슴이 불룩하면서 육감적인 분위기를 주었다. 마지막 다섯번째에 앉아 있는 여자는 몸매가 말랐으나 잘록한 허리에 옥수수를 까놓은 것처럼 말쑥한 인상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두리번거리고 있자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다가와서 물었다.

 『우리 소대장님 애인….』

 그렇게 말하다가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경비원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끔벅이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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