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반의 고참 윤일구 병장이 제대하고 떠나기 전에 나에게 해준 일은 처음 여자를 알게 한 일과 담배를 피우도록 한 것이다. 여자를 알게 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여자의 앎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와 육체를 맞대고 성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식이든, 아무리 기계적인 동작이었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경험이라는 데서 오는 심리적인 부담이다. 그것이 스치는 바람, 흐르는 물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상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육체의 상처보다 마음에 입힌 내상(內傷)이 더 컸다.
나는 평소에 그런 종류의 부도덕이 이 세상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껏 경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경멸할 대상 속에 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홍역이라고 자부하기조차 하였다. 여자를 가까이 한 일이 없는 친구가 「나는 여자 셋을 먹었지」라고 으스대면서 자랑을 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러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신이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은근히 표방하려는 이른바 콤플렉스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성인식처럼 찾아간 창녀촌의 경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그에 대한 콤플렉스도 없었고, 그것이 필요악이라고 생각해본 일도 없었다.
그 불쾌한 경험은 여러 날이 지나도록 나의 기분을 잡치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점심 무렵에 식사를 막 마치고 나오는데 건물 옆을 지나가던 소대장이 불렀다. 나는 경례를 올려붙이고 부동자세로 섰다.
『최 일병, 지금 바쁘지 않으면 심부름 하나 해주겠나?』
『네, 말씀하십시오.』
『밖에 나가서 말이데이. 오백미터 올라가면 은행이 있제?』
「예, 압니다.』
『거기 가서 은행 창구에 있는 여직원 송혜련을 찾아가라. 이 메모를 전하고시리. 뭘 전해 주면 그걸 퍼떡 가져와라.』
『예, 알겠습니다.』
송재섭은 주머니에서 접은 것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그 종이는 딱지처럼 접혀 있었다. 송 소위는 얼굴이 갸름하고 창백했는데, 항상 조용한 장교였다. 목소리도 나직하고 무슨 일이든 조용 조용히 처리했다. 그는 부대 정문 위병소 집무실로 가서 외출증에 사인을 해주었다. 나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갔다. 담장을 하나 사이로 부대 밖으로 나오면 번화한 시가지가 나타난다. 담장 안과 밖의 느낌은 판이하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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