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가로 세로 1㎝ 크기의 상아에 수십개의 글자를 새겨 넣은 기념품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신비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글자를, 그것도 붓글씨로 쓸 수 있는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현대의 첨단기술은 이보다 수만배나 작은 글자를 쓸 수 있을 정도다.
최근 연세대학교가 국내에서 가장 작은 초소형 글자를 상온에서 쓰는 데 성공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연세대 초미세 표면과학 연구센터(소장 황정남)가 실리콘(Si) 위에 분자 크기의 실리콘산화물(SiO₂)을 움직여 쓴 「YONSEI」라는 초소형 글씨는 크기가 약 100㎚(나노미터, 나노는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
이 글자는 원자 현미경의 원자 탐침을 이용, 상온에서 1㎛(마이크로미터,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 가량의 실리콘 기판 위에 실리콘 원자를 산소와 결합시켜 4층의 원자를 구성해 만들어낸 것이다.
이에 따라 황 교수는 이 기술을 이용하면 현재 대용량 슈퍼컴퓨터를 책상용 컴퓨터 크기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나 플로피디스크 등의 기억매체를 고밀도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재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집적회로의 최고 밀도는 제곱인치당 1GB며 실험실에서는 10GB까지 개발된 상태. 100GB 이상은 초상자성 한계(Superparamagnetic limit)로 인해 더이상 기억밀도를 높이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원자 한개를 기억매체로 사용할 경우 최고 1000GB까지 기억밀도를 높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극미 세계를 다루는 연구를 흔히 「나노기술」이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는 현재 연세대 초미세표면과학 연구센터 외에도 서울대 물리학과 국양 교수팀, 삼성종합기술원 박유근 박사팀, 그리고 벤처기업인 PSIA(대표 박상일) 등이 각각 지난 97년 과학기술부가 선정하는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의 일환으로 이 분야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오는 2006년까지 계속되는 이 사업의 목표는 나노미터 규모의 단위기억 영역을 갖는 초고밀도 기억매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서울대팀은 원자제어와 전하트랩, 기억매체로 이용할 수 있는 나노 자성체를, 또 삼성종합기술원은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기술을 이용한 기억 소자의 개발에 각각 주력하고 있고 PSIA는 나노센서의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서울대 팀은 자성 기억매체 이외에 상온에서 원자나 분자를 조작, 두 가지의 평형상태를 유지할 경우 이진법의 기억매체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MEMS 기술은 나노기술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중간과정이며 이 두가지 기술은 또 앞으로 얇으면서도 가벼운 차세대 전자제품의 개발 등에도 널리 활용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나노기술 연구자들은 어떻게 원자나 분자를 직접 볼 수 있을까. 이것을 가능케 한 장비가 바로 원자현미경 중에서도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SPM(Scanning Probe Microscope)이다.
PSIA사의 박상일 사장은 미국에서 벤처기업을 경영하다 돌아와 SPM 현미경을 제작·판매하는 동시에 원자현미경 고속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1분 내지 수분이 걸리는 탐침의 응답속도를 100배 이상 빠르게 해 1초 안에 읽고 쓰고 이미지 저장까지 할 수 있도록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이 박 사장의 목표.
박 사장은 가까운 장래에 수많은 과학연구에 SPM의 활용이 일반화될 것이며 심지어 앞으로 10년 안에 일반 연구원들이 현미경을 보면서 원자 분자를 직접 조작하거나 단백질 등을 합성할 수 있을 정도로 나노기술의 응용 분야는 거의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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